키가 크고 건장한 백인 톰과 피클 볼을 칠 때 내 특기인 문-볼(moon ball)을 쳐 올렸다. 상대방이 공을 못 받게 공을 공중 높이 띄우는 문-볼은 내 장기였다. 그런데 톰은 큰 키에 펄떡 뛰어올라 공중에 뜬 공을 힘껏 내려쳤다. 나는 세번이나 문-볼을 쳤는데, 세번 다 톰은 받아 쳤고 나는 그가 친 공을 못 받았다. “아하, 내가 평소에 장점이라고 믿었던 것이, 임자를 잘못 만나면 나의 약점으로 변하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클 볼 장에 사람들이 많아 쉬는 동안, 톰과 이야기를 나눴다. 톰은 딸이 스탠포드 의대에서 일을 하고 월급이 많아도 스탠포드 근방엔 집값이 몇 백만 달러에 달해서 집을 못 사고 톰의 집을 이용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친구는 몇 백만 달러 가는 집을 가진 부자가 아닌가?” 어떻게 톰은 그런 곳에 비싼 집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1980년 초기에 톰은 그곳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집을 샀다고 했다. 사업을 정리했지만, 집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운이 좋아 집값은 40년 동안에 많이 올랐다고 했다. 그들은 조지아 집에서 반년을, 캘리포니아 집에서 반년을 산다고 한다.
톰이 집을 사서 돈 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주위의 한인 들 중에 건물을 사서 백만장자(millionaire)가 된 여러 분들이 있다. 간호사로 일하다 은퇴한 분이 이곳에 집을 10채나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 그분은 내 사촌 여동생 같은 분인데, 집들을 세를 놓아 월세를 받는다. 집 한 채를 50만 달러씩 쳐도 500만 달러 자산가다.
골프 친구 중에 50년 전에 뉴욕에서 100만달러짜리 건물을 소유했던 분이 최근에 건물을 팔았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멀티-밀리어네어’라고 한다. 애틀랜타에서 40년 전에 리커 스토어를 해서 돈을 벌어 그의 가게가 든 건물 뿐 아니라 여러 개의 건물을 소유한 친구도 있다. 플로리다에서 열심히 일해 큰 건물을 가지고 있던 분은 강도를 만나 몇 백만 달러 하는 건물을 팔고 애틀랜타로 와서 이웃이 된 분도 있다. 몇 백만 달러 하는 집에서 사는 분들도 많다.
내가 살던 오하이오 영스타운은 한때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철강산업 도시로, GM 자동차 공장이 있어 부흥했던 도시였다. 철강산업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GM 자동차 공장도 외국차들에 밀려 공장을 문을 닫게 되자, 건물들 값이 떨어졌다. 한국 의사들이 은퇴하고 다른 도시로 나가려고 집을 팔려고 해도 옛날 산 값에도 팔리지 않았다. 나 자신도 은퇴하고 도시를 떠날 때, 살던 집을 30년 전에 샀던 그 값에 내 놓아도 안 팔렸다. 이혼한 남자가 아이들과 살 집이 급하게 필요해서 관심을 보이기에 싼 값에 가구까지 다 주고, 즐겁게 그 도시를 떠났다.
오하이오에서 40년 전에 세탁소를 사서 돈을 번 친구가 세탁소가 세든 건물, 여러 가게들이 있는 큰 건물을 사서 40년 전에 내가 본 첫번째 백만장자 이웃이 되었다. 세월이 가고 은퇴하고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는데, 건물이 안 팔려 그 도시를 못 떠나고 아직도 그곳에 묶여 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앞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된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친구 의사 한 분이 50년 전에 인근 땅을 몇 백 에이커 사서 십여년 기다리며 세금만 물다가 팔아 버렸다. 그분이 그 땅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큰 건물을 짓고 여러 집들을 산 분도 있다. 그분은 도시의 지하에 기름과 가스 매장량이 많아 새로운 산업 도시로 변할 수 있다는 뉴스에 희망을 걸고 아직도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
주변의 백만장자들과 살다가 보니, 우연히 살고 있는 도시 건물을 샀는데 시간이 가고 도시가 번성하고 건물 값이 올라가서 부자가 된 분들이 있는가 하면 장소, 타이밍, 운이 따르지 않아 망한 분들도 있다.
내 자신이 은퇴하고 애틀랜타에 와서 여러 명의 백만장자들과 어울려 살다 보니, 옛날에 별을 보듯 우러러 보이던 부자들이 가까이 이웃에서 보인다. 그들은 운도 좋았고 노력하여 성취한 사람들, 존경스러운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남 들 보다 더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건강, 가족의 화목, 친구,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공동체 협조정신, 삶에 대한 긍정 적인 태도 등 행복의 요소들 중에 돈은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 생활경험을 통해 느껴진다. 내가 가진 조건들을 있는 그대를 감사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는 말이 지금은 더 어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