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못 가겠네. 당신 컨디션 좋을 때 1박 2일이라도 다녀올까? 몇 해 전부터 10월 즈음이면 남편은 블루리지 파크웨이로 여행가자고 했다. 당신 좋아하는 야생화가 끊임없이 피어 있고 단풍도 아주 멋지다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까지 보여주며 상기된 어조로 말을 했다.
시원하게 펼쳐진 동부 최고의 풍경과 함께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드라이브 코스라는 말에 솔깃했지만 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차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등등의 이유들을 늘어놓으며 내년에 가자는 말로 덮었다.
그 이후로 뜻하지 않게 한 해는 남편이 병원 다닐 일이 생겼고, 그다음 가을에는 내가 한국을 한 달 정도 다녀오면서 지나갔다. 올해는 내가 시간이 걸리는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어쩔 수없이 무산되었다.
남편이 아쉽다는 표현을 했을 때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했다. 나도 당신과 함께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길 바라며 무르익은 올 가을을 기다렸다 말하고 싶었다.
남편의 서운한 마음과 나의 미안한 마음은 어쩌면 그 이전부터 조금씩 누적되어 온 것일지도 모른다. 몽고메리로 이사올 무렵에 남편은 자동차 장거리 여행을 유난히도 하고 싶어했다.
텍사스에 있는 빅 벤드 국립공원으로 계획을 잡으며 몇 번 가자고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내게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못 가는 이유도 있었다. 남편은 이유가 안되는 것 같다며 이사를 오고 난 뒤에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가보고 싶어 한 곳이 블루리지였다.
빅 벤드를 시작으로 매년 가을이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은 그 특정 장소를 가고 싶은 마음보다 그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여행을 통해서 비우고 또 다른 새로움을 채우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늘 쓰는 컴퓨터도 끝없이 업그레이드하며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를 해야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듯이 사람도 그런 일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순하게 멋진 풍경을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만 이해했다. 당신 마음 다 안다는 듯, 그럼에도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행동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쳤다. 내 안의 나만 바라보며 너무 가볍게 지나쳤다는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어느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자는 가을에, 여자는 봄에 감수성이 풍부해 진다고 했다. 봄에 피는 온갖 꽃을 보며 여심은 설렘에 기뻐하며, 남자는 가을을 슬퍼한다고 했다. 멋지게 물든 단풍 못지않게 마지막 열정을 다하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이 가을과 가장 닮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남편도 육십을 넘어선 자리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기도, 앞을 바라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시기에 남편은 가을 남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일에 쫓겨 앞만 보고 달리다가 헛헛하게 느껴진 가을바람에 멈춰서 또 다른 자신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과정이었는지도… 단풍이 물들어 가는 계절에 남편의 마음도 짙게 물들어가고 있었나 보다. 그런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표현을 아끼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오랜 시간들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남편 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구나 이웃에게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이 든다. 거울을 보며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무의식 중에 여기며 살아온 것 같다.
남편의 가슴에도 돌덩이 같은 단단함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솜사탕 같은 달콤한 부드러움도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년 가을에는 동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정상에서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며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 해야겠다. 노년의 우리 삶을 함께 계획하고 싶었을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며 짙은 아름다움으로 가을을 수놓을 모습을 그려본다. 어느새 창문 사이로 느껴지는 겨울이 발아래로 햇살을 들여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