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악순환 끊고 정치개혁 계기 삼아야”
“한국에 있는 가족에 급히 안부 전화를 돌렸다.” “북한과 전쟁난 줄 알았다.”
한국 시간 3일 밤 10시(동부시간 3일 오전 8시)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미주한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한미 양국 매체와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소식을 전해듣고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비상계엄은 약 155분만에 국회 의결로 해제됐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충격 여파가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앤젤라 윤정 맥클린 인디애나대학 교수(한국정치학)는 이날 본지에 “많은 한국계 미국인이 오늘 아침 1980년 광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과거 민주화 운동의 집단적 기억이 되살아나며 역사적 선례에 기반한 불안감이 크게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야당 주도의 국회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계엄령 해제를 의결했지만, 미국 시민들은 이미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계엄령을 악용한 한국 정부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이자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하용출 워싱턴대 잭슨국제대학원 한국학연구소장은 “한국의 정치적 역사는 쿠데타, 비상계엄 등 많은 부정행위로 유명하다”면서도 “지난 40여 년간 민주주의 제도에 익숙해진 한인들에게 이번 계엄 선포는 매우 놀랍고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계엄령 발동은 한국의 친지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이명희 미시건주립대(MSU) 제임스 매디슨 칼리지 교수(정치학)는 “커뮤니티가 가족을 걱정하는 이야기들로 가득찼다”며 “윤 대통령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그의 정치적 계산은 무엇인지만이 수수께끼로 남았다”고 우려와 당혹감을 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인한 정국 혼란 속에서도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믿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교수는 “의회 등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민주주의 기관이 최소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중 역시 크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기능을 신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홍지영 미시간대학 교수(정치학) 역시 “지금 상황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맥클린 교수는 “과거와 달리 지금의 한국 사회는 강력한 견제와 균형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며 “정부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과 경계심은 매우 높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 제도적, 대중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한인 커뮤니티가 크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이번 계엄령 사태가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한국 정치 신뢰도를 결정하는 향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았다. 그는 “한국 정치권은 진영간 협치 없이 대립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벼랑 끝’ 전술에 능하다”면서 “이번 계엄령 사태가 국민의 요구에 맞게 정치권을 재편하는 카타르시스적 효과를 내면 좋겠지만 연쇄 정치적 복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