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치열한 사랑의 작가이다. 그는 폭력에 맞서는 힘은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은 소중한 생명의 양식이라고 증언한다
3부작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인 주인공이 어느 날 뜬금없이 채식주의를 선언한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집안에서 강제로 고기를 처먹이려고 가해지는 폭력을 거부하면서 거식증 환자가 되어 마침내 모든 음식을 거부해 생명을 끊는 이야기다.
소설 1 부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주인공 자신의 이야기, 2 부 ‘몽고반점’에선 주인공의 형부가 주인공 몸의 몽고반점에 끌려 성적 퍼포먼스로 발전하는 이야기, 3 부 ‘나무의 불꽃’은 폭력의 세계를 초월하려다 파멸하는 주인공을 지켜보는 주인공 언니의 이야기다.
세 이야기을 관통하는 주제는 육식에 대한 혐오로 시작해 생명에 대한 폭력 자체를 거부하게 되며, 결국엔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자신을 초월 하려고 죽음에 이르는 비극이다. 주인공은 “왜, 죽으면 안 돼?” 반문하며 삶을 마감하면서 “산천 어디나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 가녀린 속삭임이 약육강식의 세계를 울리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약한 한 인간이 광폭한 사회적 폭력에 저항해 자신을 스스로 굶겨 죽음으로 몰아가는 어마무시한 불굴의 의지가 이 소설을 한강 최고의 작품으로 밀어 올리는 견인차라고 할 수 있다. 일부러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조 초기 사육신이 자신의 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당했다면, 이 소설에선 자신의 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백 년 전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현재 가공의 소설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연관이 전혀 없지만, 공통분모는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인간의 의지다. 〈채식주의자〉는 인간 본성에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강철같은 의지가 잠재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1980 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사살당한 15세 소년의 죽음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스트레스 장애로 삶이 파괴된 살아남은 사람들의 내면을 그린 이야기다. 소설은 각 장마다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죽었거나,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구성 하고 있다.
무자비한 군인에 의해 사살된 소년은 한 포기 들풀처럼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혼이 되어 시체들을 맴돌며 이 세상이 그리워 살아 숨쉬는 인간들에게 묻는다. “거긴, 비가 오고, 눈이 내리나요” “누가 날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이제 우리 한 텐 몸이 없으니… 몸 없는 누나를 어떻게 알아볼까”하며 흐느낀다.
한편, 살아남은 사람들도 세상을 떠난 수많은 혼들을 향해 뼈아프게 참회하며 화답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귀신의 영혼과 살아 숨쉬는 사람의 대화를 읽으면 처음에는 섬짓한 공포의 전율을 일으키지만 읽어가면서 가슴 절절히 뜨겁게 스며드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다. 인간의 목소리가 지워진 이승과 저승을 잇는 대화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사랑의 진혼굿이다.
작가는 가장 저열하고, 야만적인, 조직적인 폭력에 맞서 평범한 남녀노소가 “깨끗한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꾼” 저항은 숭고하고, 그 숭고함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지극하다고 증언한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7년, 4·3 사건에서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 과정에서 제주 주민 3만 명의 죽음을 앗아간 집단 트라우마를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은 병원에 입원한, 오랜 친구의 부탁으로 제주도 그녀의 집에 있는 앵무새에게 물과 모이를 주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 가족이 4·3사건으로 겪은 처참한 트라우마의 행적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서울에서 물과 모이를 주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제주도 눈보라 속 외딴 집을 찾아 갔을 때 앵무새는 이미 죽었고, 빈 집에서 친구의 환영을 만난다.
친구의 환영에 이끌려 수십년 전 친구의 어머니가 학살된 가족들의 행적 뿐 아니라, 처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렸다. 여기서, 작가는 그 환영의 세계를 통해 잊혀진 4·3 사건 희생자들의 참상을 현재라는 무대 위에 불러내 뿌리 깊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작가는 선언한다 “죽은 이를 살려 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 는 있다.” 그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산 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들이 겪은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작별하지 않는 일이다. 작별하지 않는 것은 죽음과 삶을 잇는 지고한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소설의 무대가 꿈같은 환영이어서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잔혹하게 학살 됐는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은 트라우마는 얼마나 깊은 지를 70여 년의 강을 건너 오늘 위에 명징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반면, 파노라믹하게 펼쳐지는 환영의 세계를 받쳐주는 주춧돌 같은 튼튼한 리얼리티가 상대적으로 조금 부족해 소설이 조금 떠 있는 듯한 아쉬움도 들었다.
〈작별하는 않는다〉는 6년 전 출판된 〈소년이 온다〉와 맥을 같이 한다. 〈소년이 온다〉에선 5·18 광주에서 야만의 공권력에 저항하며 부서진 사람들을 그리면서 삶에서 죽음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라면, 반대로, ‘작별하지 않는다’에선 평범한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죽음에서부터 삶으로 나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연작시 같은 소설 〈흰〉은 〈소년이 온다〉를 펴낸 뒤 북유럽 낯선 도시에서 지내면서 쓴 소설이다. 〈흰〉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가 없는 흰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두 손바닥을 펼쳐 기도하며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를 받아 올리듯 ‘흰’하면 떠오르는 65 개의 짧은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펴냈다.
작가는 태어나기 전, 태어나면서 세상을 떠난 언니를 그리워하는 소재들 뿐 아니라 ‘진눈개비’, ‘흩날린다’, ‘아랫니’ 등… 자유롭게 연상되는 ‘흰’ 소재의 이미지를 따라 써내려 갔다. 마치 다양하게 빛나는 65개의 이야기들을 구슬로 꿰어 눈부신 목걸이를 완성한 것 같은 이야기다. 나는 ‘흰’을 처음 읽었을 때 수상록으로 생각하고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시였다. 형식은 산문이지만 내용은 시다. 노벨상이 극찬한 한강 특유의 ‘시적 산문’이 바로 이거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을 건넬게
더 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 지,’ (‘흰’의 소제목 ‘초’에서 따옴)
사회적 폭력에 맞서 치열하게 쓴 예전의 소설들과 달리, 흰은 작가의 순결한 마음결이 아로새겨진 따뜻한 글이다. 작가 한강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무자비한 사회적 폭력에 맞서 사랑이라는 펜 하나로 싸워왔다. 그는 번번히 패배했고, 다시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패배는 승리를 넘어서는 패배다. 그는 패배해서 승리할 것이다.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그의 작품은 안 끝나는 사랑의 노래다. 선생님, 부디 건강하세요.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 한 명을 뽑으라면 그 건 한강이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