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들어도 너무 들어서 식상해진 얘기다. 필자도 그저 명언집의 목차에 써놓기 좋은 제목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 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베풀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했던 베풂은 출입문을 열고 나갈 때 뒷사람이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문이 닫히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었다. 사실 정말 간단한 행동이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겨보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열 번 문을 열면 열 번 모두 뒷사람을 문을 잡아주는 것은 성인군자나 가능한 일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을 잡아줬는데 아무 말 없이 통과하는 뒷사람을 볼 때면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고마움을 표현하는 몇몇 사람을 만날 때는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두 번째 베풂은 누군가의 결혼식 때 내가 받았던 축의금보다 더 많은 축의금을 줘보는 것이었다. 물론 상대가 그 액수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알게 된다면 조금은 감동을 더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상상을 하니 그게 그저 즐거웠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니 아이들 결혼식 때 축의금을 주지 않았던 사람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줘보고 싶은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상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나의 기분을 좋게 하리란 걸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베풂을 실천했을 때 ‘베풀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은 내가 상대에게 준 만큼 언젠가 상대도 나에게 그만큼 줄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베풂이 지속되면서 상대가 감동을 받는 순간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준다는 걸 알았고, 그것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감동시킬 수 있을까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집중하면 할수록 상대가 더 큰 감동을 받게 될 수 있는 상황들이 많아졌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 또한 이전보다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베풀면 다시 돌아온다’에서 ‘돌아온다’의 의미는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상대가 감동을 받게 되면서 나에게 고마워할 때 나에게 느껴지는 기쁨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심의 감동을 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베풀기를 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를 향한 상대의 베풂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말은 내가 그동안 베풀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사람들로부터 베품을 받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베풂을 몸소 실행하고 배우게 되면서 상대의 베풂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내가 상대로부터 받아오던 베풂을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어디선가 베풂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디선가 진심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디선가 선물을 받고 있다. 베푸는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며칠 전 우리 집에서 조촐한 경축 모임이 있었다. 우리 내외를 도와주는 가사도우미 황윤주 씨가 ‘최우수 간병인’으로 선정되어 그 시상식을 우리 집에서 치른 것이다. 회사 측의 마가렛 사장님이 달려와서 금일봉을 전달하고 격려해 주었다. 솔직히 말해 회사측의 요청에 따라 장소를 제공했을 뿐 선정 경위는 알지 못한다. 다만 뽑힐만 한 사람이 뽑힌 것은 분명하다. 사실 윤주는 우리 내외에게 보석 같은 존재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심성도 곱고 싹싹하다. 어디 그뿐인가. 믿음도 좋아서 주일이면 교회에서 우리 내외와 나란히 앉아 예배를 드린다. 아내와 둘이서 마트에 장 보러 갈 때 보면 정말 친 모녀 같다. 이처럼 지극 지성으로 도와주는데 어찌 정이 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윤주를 ‘막내딸’이라 부른다. 딸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다. ‘윤주야, 축하해!’
좋은 일은 또 생겼다. 지난 주말이었다. 윤주의 작은 딸 세아가 프리마 발레리나로 출연하는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 초청을 받아 난생 처음 발레 공연을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다. ‘호두까기 인형’은 호프만의 동화를 기초로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발레 음악이다. 현란한 안무, 다양한 의상, 아름다운 음악…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 내내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건 진심과 상호존중이다. 인연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마음을 주고받는다. 좋은 마음은 좋은 마음대로, 나쁜 마음은 나쁜 마음대로 되돌려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 세상엔 공짜가 그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베풀면 베푼 대로, 인색하면 인색한 대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네 인생살이 마음먹기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눠지듯이 작은 손 얇은 주머니 속이라 물질로 채워 줄 순 없어도 따뜻한 마음만은 넉넉하게 채워줄 가슴이 있지 않은가. 그 마음 준다 하여 우리에게 나무랄 그 누가 있을까.
우리의 아름다운 인연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마음에 남겨지는 깊은 정으로 오래 기억되는 우리이고 싶다. 윤주의 수상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라는 시다. 시인은 모든 순간이 정성을 다하는 꽃봉오리라고 한다. 늦게라도 그걸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