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치열했던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하지만 대선에 가린 또다른 투표가 있었으니, 바로 귀넷카운티 대중교통 확충을 위한 주민투표였다. 앞으로 30년간 귀넷카운티 전역에 현행 일반 버스 뿐만 아니라 한국식 마을버스를 대규모 확충하기 위해 판매세 1%를 확충한다는 계획이었다. 앞으로 귀넷카운티에 새로운 인구가 대거 유입될 것이며, 노인, 학생, 저소득층 등 경제적 약자를 위해서도 대중교통 확충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1%에 불과한 ‘세금인상’ 때문인지, 이 안건은 반대 53%로 부결됐다.
부결되긴 했지만, 귀넷 주민투표는 미국내 주민발의(referendum, ballot measure)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법을 만드는 권한은 의회가 갖고 있다. 그러나 의회가 관심을 갖지 않는 법안이라도, 주민들이 모여 직접 ‘이런 법을 통과시키자’고 선거를 통해 요구하는 것이 주민투표다. 귀넷 주민들은 공공보건과 대중교통이라는 ‘공공선’을 위해 의회를 대신해 법안을 제시한 것이다.
비영리단체 헬스 어페어스(Health Affairs)에 따르면, 2014-2023년 사이 미국에서 통과된 주민투표는 총534건이며, 이중 63.5%가 낙태와 메디케이드 등 공공보건 관련 사안이었다.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Robert Wood Johnson Foundation)의 수석 부회장 아브넬 조셉(Avenel Joseph)은 “주민발의는 정당을 초월한 직접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며 “유권자들은 주민발의를 통해 유권자들은 주 의회에서 다뤄지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관심 있는 사안에 대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24년 11월 선거에서도 전국적으로 다양한 주민투표가 치러졌다. 7개 주의 유권자들은 주 헌법에 낙태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네브래스카, 알래스카, 미주리 주에서는 유급 병가를 승인하는 법안이 통과됐으며, 미주리 주민들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는 ‘A발의안’에 찬성했다.
미주리 일자리정의 단체(Missouri Jobs with Justice)에 따르면, 미주리주 노동자 3명 중 1명이 유급 휴가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미주리주 풀타임 노동자의 세전 주급은 500달러 미만이었다. 이정도 주급으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 단체는 900명에 가까운 미주리 자원봉사자들이 21만 건 이상의 서명을 모아 주민투표를 발의시켰다. 선거 마지막 10일 동안에는 15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15만 가구 이상을 방문해 발의안을 설명했고, 결과적으로 58%의 지지로 통과되었다.
이 단체의 정치국장 리처드 폰 글란(Richard Von Glahn)은 주민투표가 특정단체나 이념에 좌우되지 않는 초당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미주리 농촌 지역에서는 4명 중 1명의 유권자가 도널드 트럼프와 A 발의안 모두 찬성했다. 주민투표는 초당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물론 주민투표를 싫어하는 세력도 있다. 주의회나 주정부가 법안 관련 주도권을 놓치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주는 올해 선거에서 낙태권을 보장하는 주민투표(Amendment 4)가 치러졌고, 주민 57%가 찬성했다. 그러나 이 주민투표는 통과되지 못했다. 플로리다 주의회가 주민투표 통과 기준을 60%로 높였기 때문이다.
투표 발의안 전략 센터(BISC) 재단의 크리스 멜로디 필즈 피게레도(Fields Figueredo) 사무총장은 “찬성 57%면 웬만한 주에서는 통과됐겠지만, 플로리다주에서는 통과되지 못했다. 주민투표 통과를 어렵게 만드는 법률적 제약 때문이다. 다수표를 얻었다고 해서 안심할수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 주민발의 제도는 민의를 법률에 반영할수 있는 중요한 제도다. 주민투표는 초당적 사안이므로 ‘민주당’ ‘공화당’ 표시가 없고, 우리 주변의 문제를 우리 손으로 직접 다룰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피게레도 사무총장은 “유권자들은 먼저 자신과 지역사회를 우선한다. 투표 발의안은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건강과 물질적 조건을 개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오는 2026년 선거에 등장할 주민투표, 주민발의에 한인들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