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수석졸업·아이비리그 석사 엘리트…기술문명 반대 ‘유나바머’ 흠모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보험 부문 대표 브라이언 톰슨(50) 최고경영자(CEO)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루이지 만조니(26)는 체포 당시 미국 사회와 대기업에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내용이 담긴 선언문을 소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0일(현지시간) 뉴욕 경찰 발표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경찰이 전날 오전 펜실베이니아주 알투나에서 만조니를 체포할 당시 그의 소지품에서는 세 쪽 분량의 손으로 직접 쓴 선언문이 발견됐다.
이 선언문에 “이 기생충들은 당해도 싸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고 NBC 방송은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만조니는 선언문에서 자신이 단독으로 범행했다고 언급하면서 “갈등과 트라우마를 일으킨 것을 사과한다. 하지만 그것은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라고 쓴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된 용의자 루이지 만조니
만조니는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술문명을 반대하며 폭탄 테러범이 된 테드 카진스키를 흠모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미국에서 ‘유나바머'(Unabomber)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대학과 항공사 등에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3명을 숨지게 한 테러범이다.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하고 24세 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최연수 수학 교수로 임명된 천재였지만, 2년 만에 사표를 내고 몬태나주 숲속 오두막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검거 전인 1995년 각 언론사에 보낸 선언문 ‘산업사회와 미래’에서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에 재앙이 될 것이라며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해야 한다는 극단주의적 주장을 폈다.
선언문 발표 후 가족의 제보에 꼬리가 밟혀 1996년 검거된 그는 지난해 6월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만조니는 SNS에서 카진스키를 “극단주의적 정치 혁명가”라 칭하고 그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미래를 두고 “선견지명이 있다”고 칭송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제시카 티쉬 뉴욕경찰청장은 NBC 인터뷰에서 “세 쪽으로 된 선언문에는 반기업 정서와 건강보험 업계와 관련된 많은 문제 관련 내용이 담겼다”라며 “다만,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향후 몇주 또는 몇 달간 이뤄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프 케니 뉴욕경찰청 수사국장도 브리핑에서 만조니에 대해 “‘코퍼레이트 아메리카'(Corporate America)에 악의를 품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코퍼레이트 아메리카는 미국의 대기업 또는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지칭하는 용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만조니는 볼티모어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인 길먼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아이비리그 명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게임업계 등에서 일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유나이티드헬스그룹 CEO 총격 용의자의 수배 포스터가 사건 현장에 붙어 있다. 로이터
만조니는 지난 4일 오전 6시 44분께 뉴욕 미드타운의 힐튼호텔 입구 인도에서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소음기가 달린 권총으로 톰슨 CEO를 살해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수거한 9㎜ 구경 탄환 탄피 3개에서는 ‘부인'(deny), ‘방어'(defend), ‘증언'(depose)이라는 문구가 각각 쓰여 있었다.
해당 용어들이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들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톰슨 CEO 살해 동기가 보험금 지급 관련 불만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에 찍힌 만조니의 얼굴을 공개하고 현상수배에 나섰으나 그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5일간 경찰 추적을 따돌렸던 만조니의 도주극은 9일 오전 9시 15분께 만조니의 얼굴을 알아본 맥도널드 매장 직원의 신고로 일단락됐다.
펜실베이니아주 경찰로부터 전날 만조니의 신병을 인계받은 뉴욕 경찰은 그에게 2급 살인 혐의와 불법 총기 소유 관련 3개 혐의, 위조 도구 소지 혐의 등을 적용하고 구체적인 범행 경위를 조사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