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볼을 치는데, 상대 팀의 한 분이 코트 선에 떨어진 것 같은 우리 공을 아웃이라고, 우리 쪽으로 날아온 공이 선 밖으로 나간 것 같은데, 선에 떨어졌다고 우겼다. 우린 고개를 갸웃하며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다고 공감했지만 양보했다. 자신이 먼저 서브하고 두번째 분이 서브를 한 것 같은데, 자기는 서브 안 했다고 다시 서브 하려고 할 때 너무 하다는 감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자기가 먼저 서브 했어!” “아니, 안 했어요!” “내 기억에는 분명히 했어. 왜 억지를 부려!” “분명히 나는 안 했어요!”
말다툼이 험해 지자 게임을 고만두고 다들 코트에서 나갔다. 나도 더 이상 언쟁을 하면서 게임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기다리던 다음 팀이 들어와서 게임을 했다. 집에 와서 그 사건을 돌아보니 피클 볼 코트장에서 말다툼하던 내 모습이 초라하고 처량하게 보였다. 화를 내는 버릇도 고치고 불리한 조건을 만나도 성숙하게 처리하려고 많은 노력했는데, 고작 그 작은 일을 그렇게 마무리하다니, 내 꼴이 초라하게 보였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화 낼 때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자주 화를 내다보면 버릇이 되어 고혈압과 그에 따른 심장병 뇌졸중 등 합병증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복통, 배탈, 설사 등 위장에 문제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장기간의 분노는 사람을 적대적이고 냉소적이게 만들어 인간관계에도 타격을 준다고 한다.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은 수면 장애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살아오면 서 화를 잘 내는 사람들 중에 중풍으로 쓰러진 사람, 만성 소화 불량인 사람,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을 나도 보았다. 결국 화를 자주 낸다는 것은 내 몸을 내가 병들게 하는 어리석은 짓인데, 피클 볼을 치면서도 화를 내고 말다툼을 하는 나는 바보가 틀림없다.
분노는 위급상황에서 경각심과 근육 긴장으로 나를 지켜 생존을 돕는 타고난 기능이고 분노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며 위험하다고 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고 내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말싸움을 하고 화를 낼 것인가?
피클 볼 장에서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친 공이 선 밖으로 나갔다고 상대가 주장하면, 내가 보기에는 안 나간 것 같아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서 인정하자. 상대가 더 가까이에서 공을 보았으니까. 대신 상대가 친 공이 내 코트에서 나갔으면 내가 더 가까이에서 보았을 경우, 상대가 아니라고 우겨도 내 의견을 존중해 달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실천하도록 하자. 그래도 상대가 우기면 들어주자. 절대로 화가 나서 말싸움을 말자.
서브에서 혼돈이 오면, ‘피클 볼 규칙’을 강조하자. 규칙에는 서브하는 사람이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듣게 큰 소리로 3개의 숫자를 불러야 한다. 예를 들면 5, 6, 1 아니면 5, 6, 2라고 불러야 한다. 첫 숫자 5는 우리편 점수, 6은 상대편 점수, 세번째 1 혹은 2는 첫번째 서브와 두번째는 서브를 가리킨다. 그래도 혼돈이 오거든 상대방 주장을 웃으면서 받아들이자. 내가 틀릴 수도 있고, 그가 틀릴 수도 가끔은 있으니 양보하자. 이기는 것 보다 즐겁게 운동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내가 내 자신을 깊이 반성할 계기를 마련한 분이 누구인가. 바로 나와 말 다툼한 분이 아닌가! 그분이 아니었다면 내가 나를 돌아보았을까. 그러니 상대가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어디에나 여러 사람이 모이면 그런 분이 있다.
나와 말싸움을 한 분의 입장에서 보면, 작은 일에 까탈을 부려 말싸움을 만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 일 것이다. 피클볼장이 아니라, 일상의 많은 어울림 속에서 비슷한 말싸움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럴 때 마다 내가 까탈스럽고 말싸움을 하며 화를 내고 산다면 나는 외톨이가 되고, 병들어 고생하며 살다가 일찍 죽을 것이다. 조금 양보하며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살라고, 나와 말싸움을 하던 분이 나에게 반성하고 생각할 계기를 주어서 감사하다.
언쟁이 있었던 1주 후에 나와 언쟁을 하던 분과 같이 피클볼을 칠 기회가 있었다. 우리 둘은 좋은 팀이 되어 즐거운 운동을 했다. 애들은 싸우며 큰다더니, 말 다툼하는 노인들 에게도 스스로 거듭날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