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an)라는 스릴러가 있다. 토미리 존스와 하비에 바르뎀의 긴장감 넘치는 열연이 돋보이며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등 4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늙는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노쇠함을 의미하는가?”라는 삶에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더욱 강렬하고 정교하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배경 음악 없이 만들어졌으며, 등장인물 가운데는 과거의 연륜과 경험만을 강조하고 현실을 부인하고 아집을 부리는 노인도 등장한다.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거야, 너를 기다려 주지도 않아 그게 허무야”라는 대사가 슬프게 와닿는다. 세상은 더 이상 노인의 경험이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노인을 공경하거나 관심을 갖지도 않는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노인들은 본래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야 할 존재지만, 그들의 국가에 대한 경제적 기여도나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그들의 노고는 잊히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사회에 부담만 안겨주는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 대가족 제도가 해체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경제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망이 많이 약해졌다. 생산성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경제활동이 별로 없는 은퇴 노인들은 국가에 부담이 되며 공적 연금 문제는 젊은 세대의 짐으로 여겨지면서 세대 간의 갈등도 더 깊어지고 있다.
플로리다 올랜도 인근에 더 빌리지(The Village)라는, 55세 이상이 되는 사람들만 입주할 수 있는 대규모 커뮤니티가 있다. 미국서 가장 잘 알려진 은퇴인들의 도시이며 인국 증가율 또한 꽤 높은 곳으로 2022년 기준으로 평균 연령은 73.4 세이며, 현재 인구는 15만 명이 넘는다. 대다수 백인들이 거주하지만 다른 인종들도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골프장, 수영장, 테니스 장, 클럽하우스. 극장, 쇼핑몰, 식당, 병원, 그리고 신문사, 방송국등 웬만한 도시보다 더 훌륭한 편의시설과 인프라가 갖춰진 노인들의 커뮤니티이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부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단점도 있다.
은퇴한 후의 극복해야 할 대표적인 것이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극복해야 할 문제로 여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으로, 일본인 여성 시노다 도쿠씨의 저서 “103세 돼서야 알게 된 것-인생, 혼자라도 괜찮아”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는 평생 혼자 살며 외로움과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자신의 발로 혼자 서있는 사람은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의존하면 인생은 최후까지 내 것이 된다”라며 혼자 살면서 터득한 자신의 체험으로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들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물려 드리겠습니다.” 조병화 시인의 ‘의자’라는 시의 끝 부분인데 물러날 때를 미리 생각하고 세대교체의 당위성을 잘 표현한 느낌이 든다. 젊어서는 삶의 앞쪽, 가까운 쪽, 좋은 것만 보기를 원했다면 나이 들어서는 좀 더 뒤쪽, 더 먼쪽을 보는 자세, 세상의 중심에 있는 듯한 생각과 행동을 멀리하고, 참여와 간섭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관조하는 자세로 삶을 사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현실적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사실 그 개념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노인의 삶이 외부 환경이나 사회적 인식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의해 그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마음의 공간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를 창조할 수 있다. 이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통해, 또 다양한 경험을 나누는 커뮤니티를 통해 가능해진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긍정적인 태도와 열린 마음을 기반으로 하며, 우리 스스로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노인을 위한 나라는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삶의 가치를 함께 존중하는 마음의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언급하며, 가장 위대한 삶의 가치는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결코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낮은 곳에 머무는 겸손함을 지닌다.
물의 특성은 은퇴 후의 삶에도 깊은 교훈을 제공한다. 만약 우리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물처럼 살아간다면, 삶의 후반기를 더욱 편안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겸손과 배려로 가득한 삶은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며,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결국, 은퇴 후의 삶도 물처럼 유연하고 부드럽게 흐른다면,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