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주고받는 일들이 세모를 느끼게 한다. 선물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선물은 단순히 물품에 그치지 않는다. 선물을 고르는데 들이는 고민, 시간, 비용과 더불어 ‘주고 받는 행위’를 포함한다. 선물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은 풍요롭다. 복도 받는다. 그래서 갈수록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베풀게 된다. 반대로 베풀지 못하고 받기만 바라는 사람은 늘 허기지게 마련이다. 그 허한 마음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래도 배고프다. 그 원리를 깨닫고 배우게 하는 것이 바로 ‘선물’이다. 선물을 받는 기쁨도 쏠쏠하지만 주는 기쁨은 훨씬 더 크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단편소설이 있다. 미국의 작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이 소설은 ‘가난한 부부의 사랑을 독자에게 던져놓음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하고 어떤 것이 행복한 지에 대해 생각할 선택지를 준다. ’가난하지만 착한 부부‘의 에피소드를 통해 ’모든 인생은 가치가 있고, 사명과 목적이 있다‘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며 ’어떤 선물이 좋다‘라는 답이 아닌 ’선물을 고민하는 사람 자체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오 헨리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견하고 선물로 가져온 ’현자‘가 말 그대로 ’현명한 사람‘이기에 ’동방박사의 선물=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해결이 가능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그 위에서 ’전혀 현명하지 못한 선물‘을 주고 받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고는 부부가 주고 받은 선물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선물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야기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부부 짐과 델라는 허름한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델라는 짐에게 줄 선물을 고민한다. 사랑하는 남편이 가지면 영광스러울 만한 선물을 하고 싶다. 델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윽고 한껏 길게 어깨 위에 드리우자 황금빛 폭포가 물결치듯 빛나는 머릿결이 드러난다. 머리카락은 그녀의 대단한 자랑거리다. 델라는 단호하고 재빠르게 상점으로 찾아가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다. 그 댓가로 20달러를 받았고, 가지고 있던 1달러를 더해 시곗줄을 구입했다.
델라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을 기다린다. 짤막해진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남편이 자신을 예쁘게 여기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온다. 짐은 아내의 달라진 모습에 멍하니 바라본다. 델라는 남편에게 말한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요. 당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제 머리카락은 하나하나 셀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을 위한 제 사랑은 누구도 셀 수 없을 거예요.” 그러자 남편이 대답한다. “머리카락을 잘라버렸건, 면도를 했건 그런 것들이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을 어떻게 하지는 못해. 하지만 저 박스를 열어보면 내가 왜 멍청했는지 알게 될 거야.”
델라는 짐이 내민 박스를 펼쳐본다. 그 안에는 델라가 오래 전부터 갖고 싶어했던 머리빗이 담겨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델라의 머리채에 꽂으면 아주 잘 어울릴 빛깔의 머리빗이었다. 델라가 준비한 시곗줄을 받은 짐이 말한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보류하기로 해. 나는 당신 머리빗을 살 돈이 필요해서 시계를 팔아버렸어.”
델라는 머리카락이 금방 자랄 것이라며 남편을 위로하고, 짐은 음식을 만들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며 아내를 위로한다. 이 에피소드는 ’모든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결합해 ’이들의 현명하지 못한 희생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고심 끝에 선물을 마련했지만, 서로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선물하게 된 부부, 그런데도 짐과 델라가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마지막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들에게 끝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선물을 주고 받는 모든 사람 중에서 짐과 델라 두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처럼 선물을 주고받는 모든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 어디에 있든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우리 부부는 ’작은딸‘이라고 부르는 간병인으로부터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아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화장품을, 나는 침상용 모포를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 얇은 이불이 좀 추웠는데 모포는 그야말로 내게는 안성맞춤의 선물이었다. 이불과 모포를 겹으로 덮고 자니 한결 따뜻해서 숙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딸의 센스있는 선물도 좋았지만, 정성스럽게 또박또박 쓴 예쁜 카드는 더 큰 감동이었다.
“사랑하는 어머님, 아버님, 타국에서 일을 시작하며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며 엄마 아빠가 함께 미국에서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는데 하나님이 제게 뜻밖의 선물을 주셨네요. 매번 맛있는 아침과 간식으로 저를 챙겨주시는 우리 어머니, 항상 사랑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아버님, 늘 감사드리고 저희의 인연 오래 오래 지속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너무 과분하다. 하지만 우리도 인연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와 똑같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마음을 주고받는다. 좋은 마음은 좋은 마음대로, 나쁜 마음은 나쁜 마음대로 되돌려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다. 우리네 인생살이 마음먹기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눠지듯이 작은 손 얇은 주머니 속이라 물질로 채워 줄 순 없어도 따뜻한 마음만은 넉넉하게 채워줄 가슴이 있지 않은가. 그 마음 준다 하여 우리에게 나무랄 그 누가 있을까. “딸아, 고마워.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