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의료보험사 CEO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미국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CEO의 사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보내는 한편, 의료보험 업계가 직면한 근본적 문제들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많은 한인들이 미국 의료보험의 복잡한 신청 절차, 보험금 청구 거부 등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겉보기엔 복잡하고 불합리해보이는 미국 의료보험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 때문이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보건의료가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정부의 책임이다. 그 결과 각 주마다 의료보험 제도가 조금씩 다르며, 그에 따라 적용되는 치료 및 약품도 다르다.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Robert Wood Johnson Foundation) 캐서린 헴프스테드 박사(Dr. Katherine Hempstead)는 “거주지역과 가입한 보험에 따라 약품 보장사항이 달라진다”며 “예를 들어 낙태권과 관련해 주마다 법률이 달라, 어떤 주에서는 산부인과 치료 범위에 따라 환자의 목숨이 왔다갔다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피츠버그 대학(University of Pittsburgh)의 미란다 야버 교수(Dr. Miranda Yaver) 연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36%가 최소 한 번 이상 보험 적용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으며, 이 중 60%는 여러차례 거부당한 적이 있다. 카이저 가족재단의 조사에서는 보험금 청구의 약 17%가 거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금 신청 및 승인, 거부 과정은 일정한 법률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지만, 일반인들이 이를 모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보험금 신청이 거부당하면 부당하다고 느끼고 분노하게 된다. 야버 교수는 “미국 의료 시스템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대응하기 어렵게 설계돼 있다”며 “예를 들어 미국 성인의 평균 독해 수준은 8학년 수준인데, 의료 관련 문서는 11-12학년 수준으로 작성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잡한 서류와 절차 때문에 건강정보 이해력(헬스 리터러시)의 격차가 발생하며, 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환자들이 부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보험사들이 AI를 도입해 보험금 청구를 처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의료보험 청구할 때마다 자동응답 전화 때문에 수십분에서 몇시간을 기다려본 환자들로서는, AI까지 등장한다면 더욱 큰 불편을 겪을 것이다. “AI를 통한 보험금 신청 대량 처리는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청구 오류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고 야버 교수는 직면했다. 복잡한 의료보험 청구에 직면한 취약계층이 AI 시대를 맞아 의료보험 서비스의 차별과 소외를 겪을 수 있다고 야버 교수는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조시 베커(Josh Becker)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은 최근 ‘의사 결정법(SB 1120 Physicians Make Decisions Act)’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의료보험 청구 과정에서AI알고리즘이 내린 보험 청구 결정을 면허를 가진 의사가 감독하도록 의무화한다. 보험금 청구가 AI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이 법은 내년 1월 5일부터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행된다.
베커 의원은 “다른 나라는 인간 의사가 의료보험 과정에 개입하면서도 비용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반면 미국의 의료보험은 다른나라에 비해 매우 복잡하며, 의료비 지출 중 30%가 보험금 청구 관리에 사용된다”며고 지적한다. 그는 “AI가 질병 탐지나 영상 판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의료보험 서비스에 있어서 적절한 수준을 결정하는 주체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개선은 제도에 대한 이해, 그리고 효율성과 인간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제다. AI와 같은 첨단 기술의 도입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하지만 이것이 의료 서비스의 본질인 ‘환자 중심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보험사, 의료진, 정책 입안자들은 보험금청구와 AI도입에 있어서 ‘환자의 복지 증진’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잊지 않고, 환자들은 보험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