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사고 여객기에 연말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푼 마음으로 해외 나들이에 나선 가족, 동료들이 다수 탑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무안국제공항을 주로 이용하는 광주·전남 주민들이어서, 지역민들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29일 구조 당국에 따르면 전남 영광군 군남면에 거주하는 A(80)씨 일가족 9명이 이날 오전 무안공항에 착륙 중 사고가 난 제주항공 7C2216편에 탑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181명 탑승자 중 최연장자다.
A씨와 자녀 등 4명은 영광에 살고 있으며 나머지 친인척 등 5명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A씨 팔순 잔치를 위해 함께 태국 방콕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려고 사고 여객기에 탑승했다.
부모와 자녀, 손자 손녀까지 3대 일가족이 함께 희생되기도 했다.
무안공항에서 취재진이 만난 한 60대 남성은 형수와 그의 딸 부부, 부부의 어린 미성년 자녀까지 3대에 걸친 일가족 5명이 사고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가족 여행차 태국으로 떠난 가족들이 주검으로 돌아오자 오열했다.
진도에서도 아버지와 아들, 사위, 손자 2명 등 일가족 5명이 함께 방콕을 다녀오면서 사고 여객기에 탑승했었다.
화순에서는 과거 함께 근무한 공무원 3명과 퇴직 공무원 5명이 동반 여행길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자매 사이인 목포시 공무원 2명도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던 길에 사고가 났다.
며느리들끼리 매년 해외여행을 함께 다녀올 정도로 화목했던 가족도 참변을 피하지 못했다.
사고 여객기에는 연말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났던 다양한 연령층의 승객이 탑승했다.
패키지여행이 주를 이루는 전세기의 특성상 가족여행을 다녀오던 가족 간의 참변이 유독 많았다.
탑승객 다수는 지난 25일 오후 8시 50분 무안에서 방콕으로 출발해 29일 오전 돌아오는 3박 5일 일정의 상품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연소는 2021년생 3세 남아였으며 최연장자는 팔순 잔치를 다녀온 영광 주민 A씨다.
연령별로는 50대가 40명으로 가장 많았고, 60대(39명), 40대(32명), 70대(24명), 30대(16명), 20대(10명), 10대(9명), 10세 미만(5명)이 뒤를 이었다.
종일 무안공항 대합실을 지킨 가족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한 가족은 “늘 고생만 하다가 이제 형편이 나아져서 놀러 간 건데…”라며 말을 잇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광주·전남 지자체들은 지역 출신 탑승객이 있는지 파악해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29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사고 탑승자 가족들이 모여있다.
“내 새끼 어쩔까나, 어쩌면 좋나” 절규에 파묻힌 무안공항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이 가족의 시신을 찾는 것이라면, 그 심정을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족을 차가운 주검이나마 다시 품에 안고 떠나려 한 유족들의 애끊는 절규는 하루 종일로는 부족해 밤새 무안국제공항을 뒤흔들었다.
“내 새끼 어쩔까나”, “어쩌면 좋으냐”를 수십번 반복하며 20분 이상 오열한 할머니는 결국 쓰러져 임시쉼터에 옮겨졌다.
쉼터 안에서도 할머니는 편히 눕지도 못하고, 손자들 손을 잡고 온몸을 벌벌 떨며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날인 29일 오전 무안공항에서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에 혹시나 하고 뉴스를 검색하던 유족들은 방콕에서 돌아오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공항으로 한달음으로 달려왔다.
활주로 끝에서 산산조각 난 여객기에 사랑하는 내 가족이 있지만, 유족들은 현장에 갈 수도 직접 가족을 찾을 수도 없어 공항에서 구조 당국과 수습 본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소식만 하염없이 기다렸다.
2명의 생존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잠시 잠깐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 179명 희생자의 가족들은 시신이라도 온전히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잔혹한 바람으로 긴긴 시간을 버텼다.
’22명, 47명, 62명, 179명’
시간 단위로 늘어가는 희생자 숫자에 가족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시신을 찾아도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다.
여동생의 가족 3명을 한꺼번에 잃은 50대 여성 A씨는 여동생과 조카의 시신은 수습됐지만, 매부는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매부를 찾느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현장 관계자를 붙잡고 애원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모든 가족을 찾았지만, 법적 처리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유가족은 가족을 데리고 공항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사망진단서를 끊어주질 않아 못 떠나고 있다”며 “179명이 죽었는데, 검안의가 5명 밖에 없어 저 사고 현장 내 격납고 뉘어진 가족을 데리고 못 나가고 있다. 이게 뭐냐”고 오열했다.
탑승자 모두를 찾았지만 자기 가족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가족들도 애타긴 마찬가지였다.
60대 남성 B씨의 아내는 동서들과 태국 여행을 갔다가 모두 참사의 피해자가 됐다.
동서들은 모두 신원 확인됐지만, B씨의 아내만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그는 아들 부부와 함께 탑승자 가족 지원 창구를 계속 서성거리며 명단을 확인하고 돌아가길 반복했고, 아들은 엎드려 울기를 반복했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희생자의 남편과 아들의 얼굴은 눈물을 참다못해 붉게 올랐다.
수습 당국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고 한명 한명 불러가는 신원 확인자 명단을 들은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울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