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10
어둠이 깔린 저녁, 이탈리아 광장에 중년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자동차 소리와 자잘한 백색소음들 사이로 감독은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들려준다. 그 사이를 걸어 중년 남자가 도착한 곳은 바이올린 독주회가 열리는 음악홀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마에스트로 라고 부른다. 오늘 연주의 주인공 “아메리고 벤베누티” 였다. 그는 자신의 대기실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집어든다. 전화 속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아메리고에게 알려준다.
주인공 아메리고에게는 두명의 어머니가 있다. 생모인 남부의 어머니와 길러준 북부의 어머니, 전화는 생모인 남부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평소 노래를 잘 불렀던 어머니의 노랫소리와 함께 아메리고는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1940년대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사람들의 생활은 열악했다. 폭격으로 거리에는 건물 잔해가 널려 있었고 아이들은 철근이 드러난 잿더미 위에 방치된 채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다. 정부에서는 남부의 열악한 지역의 아이들을 북부의 넉넉한 집으로 보내 어려운 시기를 보낼 것을 권장했다.
아메리고의 어머니 안토니에따는 아들을 보낼 결심을 한다. 남편 없이 혼자 생계를 꾸리기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아메리고를 루이지처럼 잃고 싶지 않았다. 천식으로 아픈 아이를 약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보냈던 것이다.
아메리고는 어머니가 쥐어 준 빨간 사과를 꼭 쥐고 열차에 오른다. 북부에서 아메리고는 데르나라는 여자와 함께 살게 된다. 데르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외롭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고를 보살피면서 데르나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게 되고 아메리고는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방치된 삶이 아니라 처음으로 울타리안에서 보호 받은 어린이다운 생활을 하게 된다. 데르나의 사촌들과 어울리면서 아메리고는 가족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책임과 사랑을 느낀다. 생활의 안정은 아메리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한다. 나폴리 어머니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자란 아메리고에게는 바이올린이 내는 소리들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데르나의 오빠는 아메리고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하며 꾸준히 연습하라 격려한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 봄이 되자 아메리고는 다시 나폴리로 돌아가기로 한다. 북부에 남기로 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아메리고는 바이올린을 안고 돌아가는 기차에 오른다. 하지만 아메리고는 이미 예전의 아메리고가 아니었다. 안토니에따 역시 자신을 잊은것 같은 아메리고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어 화를 낸다. 안토니에따는 아들이 남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보다 아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바이올린을 전당포에 맡기고 북부의 편지들도 전해주지 않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아메리고가 항의하자 안토니에따는 얼결에 아들의 뺨을 때리고 만다. 아메리고는 새벽녁 몰래 집을 빠져나와 북부의 집으로 향하고 데르나는 아메리고를 반갑게 맞이한다.
영화는 부고를 받은 아메리고가 나폴리의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아메리고는 벽에 있는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며 어머니가 자신을 언제나 보고 있었음을 느낀다. 침대 밑에서 어린 시절의 바이올린을 찾은 아메리고는 그 속에 있는 전당포 쪽지를 발견한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바이올린을 한없이 감싸 안았을 어머니 …. 때로는 붙잡는 것보다 놓아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이라고 한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아메리고는 한없이 오열한다.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은 전쟁과 빈곤으로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희생의 감동을 잔잔한 서사로 그려내고 있다. 원작자인 ‘비올라 아르도네’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실제 있었던 이 프로젝트는 ‘구호열차’ (Treni della Felicita’, 행복의 열차)로 불렀으며 약 70,000 명 이상의 아이들이 일정기간 북부의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며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는 전쟁과 빈곤으로 가족과 헤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런 비극적인 이유가 아니어도 많은 이별을 하고 있다. 고국을 등지고 타국으로 떠나면서 이별했고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별을 감수하고 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없어도 크건 작건 나름의 아픈 이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놓아주는 것이 상대방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이기에 기꺼이 감수했던 시간들이 왠지 서글퍼지는 날, 그런 날을 위해 이 영화를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