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뉴저지 아들네 집에 갔다. 비행기에서 뉴저지 공항에 내려 출구로 나오니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 쪽으로 온다. 키가 크고 건강한 아들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중년의 나이에 머리가 빠져 대머리가 나를 닮았지만 운동을 계속해서 인지, 30대 청년처럼 보인다.
그가 운전하며 그의 집으로 가는 동안, 아들네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두 딸, 내 손녀들이 방학으로 집에 와서 기다린다는 것, 의대 다닐 때 빚과 집 살 때 빌린 빚을 다 갚았지만 한달 집 세금이 2000달러 가까이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가 한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인 말, 내가 몰랐던 사건은 따로 있다. 듣고 보니 5살에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 그의 성장 과정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만든 분기점이었던 이야기였다. 그 사건은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78년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일을 하다가 공부를 더 하려 메릴랜드 주립대학에 가서 제일 싼 아파트를 찾아 살던 때, 4학년이 된 아들은 학교 버스 타고 워싱턴DC 근방에 제일 가난한 동네 학교에 다녔다.
“운동 시간과 노는 시간에 해리라는 덩치가 큰 흑인애가 왕초였고, 그가 공을 잡고 뛰면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었어요. 애들 중에 나 혼자만 아시안, 나는 친구도 없고, 덩치도 작고 힘도 해리를 당할 수 없어, 그가 공을 잡고 달리면 감히 태클을 걸 수 없었는데, 하루는 작정하고 공을 가지고 달리는 해리의 어깨와 목을 움켜잡고 매달렸지요. 밀쳐내도 매달렸더니 그는 결국 쓰러지고, 쓰러 질 때 공을 내가 잡고 뛰었어요. 애들이 모두 고함치며 난리 치고 나를 다시 보더라고요.” 아들이 운전하며 말했다. “그래서?” “친구들도 생기고 학교생활이 좋아 졌지요.”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전에 감동 깊게 읽은 아이젠 하워 대통령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생각 났다. 그가 학교도 가기 전, 가족들은 바쁘게 흩어지고 어린 그는 혼자 집에서 놀던 때 이웃집엔 거위들을 길렀다. 그가 나타나면 거위 중에 큰 대장 거위가 고개를 낮게 빼고 달려 들었다. 그는 겁에 질려 도망 갔다. 그러다 보니 큰 거위가 그만 보면 고개를 낮게 들고 쫓아왔다. 보기만 하면 공격하는 거위 때문에 그는 혼자서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밖에 나가고 싶은데 거위가 무서워 못 나갔다. 문득 현관에 있던 지팡이가 보였다. “저 지팡이로 거위가 덤벼들면 때려서 막을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그는 지팡이를 쥐고 문 밖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큰 거위가 그를 향해 머리를 낮게 들고 쫓아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꽥, 하는 소리가 들리고 거위는 절뚝거리며 도망 갔다. 그는 신통해서 이번에는 도망가는 거위를 향해 갔다. 거위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도망쳤다.
다음날 아이크가 집을 나갔다. 같은 거위가 그를 멀리서 보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지팡이가 없는데도 거위는 그를 피했다. 그는 세상을 정복한 듯이 신나서, 거위들 있는 쪽으로 걸어보았다. 아이젠 하워 전기에서 거위사건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자라오면서 만나는 어려움과 시련이 닥칠 때마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도전해서 해결하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겼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을 연한군의 승리로 이끈 5성 장군, 콜롬비아 대학 총장, 미국 대통령으로 공헌한 인물, 그의 삶의 태도의 분기점은 어려 서의 거위 사건이라고 한다.
은퇴를 생각하는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빠인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그의 기억속에서는 잊을 수 없는 큰 사건일 것이다. 아빠의 유학 때문에 영어도 모르고 친구도 없는 미국에 와서 미국 또래 애들에게 짓눌리고 주눅들고 영어 때문에 무능했던 자신이 시원하게 이룬 일, 친구들이 알아준 일, 그는 계속 도전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열심히 정구를 처서 고등학생 때는 챔피언도 되고, 당시 미국 대통령인 지미 카터 뿐만 아니라, 재계와 정계 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걸 알고 해사에 가고, 의사가 더 좋아 보여 해군 의무 복무기간이 끝나자 의대에 도전하고, 의사가 되어 아픈 환자들을 잘 치료하고, 자신의 체력을 위해서 아직도 열심히 운동 하고, 저의 가정을 잘 보살피는 좋은 가장이 된 것, 그의 적극적인 삶의 태도의 분기점은 4학년 때 사건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길을 잃을 위험이 있거나 실패할 위험이 있어도, 도전해 봐. 실패하면 실패에서도 배우지만 시도를 안 하면 아무것도 없어!” 아들이 그의 딸 남자친구에게 말 할 때, 나도 동감이서 빙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