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작정한 것이 몇 있었다. 대단한 야망이나 포부를 갖지 않고 사는 것처럼 내 일년계획은 단순했다. 우리집에서 나가는 쓰레기를 줄이고, 매일 책과 시 읽기, 그리고 시 한편을 쓰는 것 등이었다. 모두가 쉽고 가능한 일이었으나 연말에 생각하니 이 간단한 일도 제대로 다 실천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사는데 일주일에 두 번 쓰레기 수거차가 올 때마다 쓰레기통을 집 앞에 내다 놓으면서 늘 미안했다. 몽고메리는 재활용을 하지 않으니 무조건 모두 토지에 매몰된다. 미국 땅덩어리가 넓다지만 내가 자연환경에 끼치는 피해를 줄이고 싶었다. 처음 몇 달은 잘 실천하다가 여름부터 의식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버렸다. 더구나 밖의 부엌에서 음식을 담아온 컨테이너들이 많아서 쓰레기 줄이기는 실패했다.
책을 읽는 것은 그런대로 실천이 잘됐다. 집안 곳곳에 가득한 책들 중에서 눈길주는 책을 선택해서 읽고 내용을 나에게 적용시키면 내가 참 멀리로 헤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이 추천한 책도 좋지만 외면 받고 있는 책에도, 특히 이민자들의 글을 통해서 대륙과 대양을 동서남북으로 유동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문화교류와 인류역사가 이루어졌고, 현재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영어권에 사는 내가 한글로 글을 쓰면서 태평양을 건너뛰는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
하루에 시 한편 읽기는 의외로 쉬웠다. 함께 문학에 열정을 쏟는 여성문학회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매일 좋은 시를 소개한 바람에 전혀 몰랐던 시를 많이 알게 됐다. 명시를 읽으면서 가볍고 무거운 삶의 무게를 느꼈고 통찰의 깊은 정수를 즐기며 정서적으로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동서고금 시인들의 독창적이고 지혜로운 안내서가 내 삶의 지침이 되어서 길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에 시 한편을 쓰겠다는 각오는 우연히 시작됐다. 2023년 12월에 애틀랜타 문학회의 행사에 참석했다가 누군가가 하루에 시 한편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동을 받았다. 시작법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가끔 습작으로 연습했으니 나도 시도해 보고 싶었다. 쉬운 단어로 내가 일상에서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 중에 한가지 주제로 자유시를 썼다. 어떤 날은 쉽게 술술 써졌고 어떤 날은 밤잠을 설치며 감정의 흐름을 잡았지만 적절한 단어를 못 찾아 괴로웠었다. 그러나 한번 마음 먹은 것이니 줄기차게 노력해서 숙제 하듯이 매일 시를 썼다.
연말에 일년 쓴 시들을 읽어봤다. 추상화가 아니라 사실화로 간결한 언어들에 녹아 있는 내 감상의 흐름에는 나 자신과 가족친지, 주변 환경 모두가 내 삶의 테피스트리로 짜여져 있었다. 다양한 색깔 있는 의식의 줄기들이 모여서 만든 그림에는 조각조각 분리되어 산만한 사회환경에 오염되지 않으려는 발버둥과 내 삶의 의미를 찾는 끝없는 갈구가 보였다. 사실 이것을 묶어서 작은 책자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들었다.
아무튼 올해는 다시 쓰레기 줄이기에 노력하고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들은 정리할 작정이다. 어디서 읽은 잡동사니들을 처리하는 ‘90/90 Rule’ 원칙이 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지난 90일 동안에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90 일 내에 사용할 것인지 묻고 아니면 무조건 떼어내는 룰이다. 나는 90일 시간을 늘려서 ‘1년/1년 룰’로 할 작정이다. 우선 옷부터 시작해서 부엌용기, 집안에 꽉 들어있는 소소한 물건들을 거쳐서 나중에는 책까지, 하나하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분리하려고 한다. 추억을 떼어내는 작업이라 쉽지 않아서 그동안 머뭇거렸던 일이다.
그리고 올해는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편지 한통을 쓰기로 했다. 매일 내 일상과 연관되는 대상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니 어쩌면 시를 쓰는 것보다는 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두터운 노트북을 구해서 1월1일부터 시작했다. 매일 나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니 손 글씨가 단정해진다.
그렇게 올해도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라는 말을 믿으며, 삶에 충실하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자고 작정하니 작년에 소개받은 시, 네이이라 와히드의 ‘흉터’가 생각난다.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이 시를 읊으면 흉터 많은 내 인생이 당당하고 자연스러워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