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은 내 오빠다. 어느 모임에서나 그가 나를 여동생이라 소개하면 갸우뚱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단의 엄마가 나를 입양했다”고 설명해줬다. 단은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네브래스카주 출신이고 나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동양여자이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남매인지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단과 나의 허풍스런 스토리를 믿었다.
우리는 남부에 정착하고 사는 공군 가족이다. 오래전에 단과 그의 아내 글렌다를 연극장에서 만났다. 군무원인 글렌다는 멕스웰 부대에서 나와 같은 소속에서 일했기에 안면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행사에서 다시 만났을 적에 단이 우리 부부의 출신지를 묻자 내가 신나게 대한민국을 선전했다. 그가 크게 웃으며 자신이 한국에서 근무하며 직접 보고 느낀 한국상은 내 설명과 일치하지 않지만 좋다고 해서 우리는 단번에 죽이 맞았다.
그때 옆에서 일본계인 남편이 한국자랑 부풀리는 내 나쁜 버릇이 나왔다며 나를 핀잔주자 단이 즉각 나를 옹호해줘서 내가 단을 “큰 오빠”라 불렀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남매로 엮어줬다. 그러다가 더 재밌는 사실도 알게 되어서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함을 알게 됐다. 남편은 엔지니어로 80년대초에 용산에서 근무했는데 남편이 한국을 떠난 후 그 직책을 바로 단이 물러 받아서 같은 일을 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인연인가. 단과 남편은 그들이 임무를 수행한 에피소드를 한바탕 나누었다.
그후 남편과 내가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연출하면 단은 언제나 내 편이었고 뭐든 내 의견을 신중히 들어줬다. 더구나 두 부부의 취미와 흥미분야가 비슷해서 우리의 교제는 깊어졌다.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온갖 주제를 도마질 했고 서로가 다녀왔던 세상나들이를 나누며 삶의 폭을 넓혔다. 나는 친 오빠들에게서 받아보지 못했던 배려와 사랑을 그로부터 듬뿍 받았고 남편의 시샘은 묵살했다.
단 삼촌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성장하던 내 아이들에게 그들의 12 에이커 숲은 좋은 놀이터였고 언젠가 큰사위가 불꽃놀이 재료를 잔뜩 가져온 것도 카운티에 있는 그들의 집 뜰에서 신나게 터뜨렸다. 여름에 데려간 어린 손주가 미니 박물관 같은 그들의 동서양 소장품에 호기심을 보이자 단은 하나하나 흥미로운 스토리로 풀어줬다. 아이는 독특한 문화물을 통해 세상 여러 나라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24년 전 현대자동차가 공장을 지을 적에 단은 내 오빠 노릇을 든든히 해줬다. 현대가족 부인들이 남부생활에 적응하느라 애쓸 적에 나는 여러 엄마들을 단의 집으로 데려갔었다. 단은 미국음식 요리하는 것을 직접 가르쳐주고 맛도 보여줬다. 한인 부인들은 정기적으로 단의 부엌에서 음식만 아니라 문화를 소개받았다. 훗날 한국으로 돌아간 그들을 서울에서 만나니 단의 부엌을 그리워 했다.
근래에 단은 다리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을 세번 받았고 거동이 불편했지만 여전히 활발했다. 그가 해마다 연말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그들 부부에게 일어났던 일이나 했던 일들을 알려줬는데 단의 편지가 안 와서 궁금하던 차에 글렌다의 편지를 받았다. 전혀 예상 못한 소식이 있었다. 편지에 알려준 번호로 글렌다에게 전화했다.
지난 6개월, 많은 아픈 변화가 있었다. 화장실을 개조하던 일꾼들과 농담하던 단이 갑자기 쓰러져 깨어나지 못한 것, 몬테발로에 있는 국립묘지로 단을 떠나 보낸 것에 이어서 많은 수집품과 살림살이를 에스테이트 세일로 판매처리한 일, 글렌다가 아파트로 옮기고 집을 매물로 내어놓은 일 등 그녀가 헤쳐 나온 사건들에 어지러웠다.
왜 진즉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더니 글렌다는 컴퓨터가 고장나 연락처를 몰랐고 온갖 중요한 서류나 정보를 따로 프린트해둔 것이 없어서 애먹었다고 했다. 컴퓨터와 서류관리는 평소 단의 일이었다. 얼마나 정신없었을까 진심으로 미안했다. 글렌다는 내가 보낸 연말편지를 받고 내 주소를 알았다. 나도 이참에 지인들의 연락처를 프린트해서 남편의 책상에 붙여주려 한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농담처럼 숲속 자신의 집에서 죽고 싶다던 단은 소망을 이루었다. 퇴직 후 5대양 7대륙을 휘젓고 다니며 한없이 여행했던 그의 삶은 멋졌다. 내 귀에 쩌렁쩌렁한 단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작별인사에 편히 쉬시라고 답하고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을 기렸다. 긴 세월 사랑하는 큰 오빠 단 암스트롱과 만든 아름다운 추억이 내 가슴에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