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이민사회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강경한 반이민 정책과 대량 추방을 다짐한 그의 등장 앞에 서류미비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육체적으로 힘들어 미국인들이 꺼리는 일을 도맡아 하는 불체자 단순노동자가 사라질 경우, 농산품과 축산품 등의 인건비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 건설 현장 인력의 30%, 캘리포니아는 40%가 불체자 노동자들로 추산된다. 지금 한인업소, 식당 들을 살펴봐도 불체자 노동력은 무시할수 없다. 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질 경우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미국 경제는 더욱 휘청일 것이다.
요즘과 같은 자연재해의 시대에 이민자들은 단순한 노동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최근 LA의 대형 산불 현장에서 묵묵히 복구 작업을 이어가는 이민자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예를 들어 파사데나 일자리센터에서는 이민자 노동자들이 매일 1,500여 가구에 생필품을 제공하고 자발적으로 복구단을 조직해 잔해를 치우는 등, 지역사회 재건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보이지 않는 영웅’이 되고 있다고 일리노이 대학 시카고(University of Illinois Chicago) 도시계획학과 닉 테오도르(Nik Theodore) 교수는 지적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서류미비 불체자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확히 20년전, 부시 W. 대통령의 이민개혁 노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의 골수 보수 대통령이었지만, 이민개혁에는 적극적이었다. 그는 임기 동안 불체자들에게 시민권 취득의 길을 열어주는 ‘포괄적 이민개혁’을 적극 추진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결국은 좌절했다.
그러나 그의 임기중에 몇가지 전향적인 정책은 주목할만하다. 그중 한가지는 2005년 루이지애나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피해 지역 복구를 위해 건설업체 등 일부 업체에 서류미비 노동자를 고용해도 처벌을 중단하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민법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의 회복이 더욱 중요하다는 보수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 이상의 강경 보수 성향이지만, 오히려 보수 성향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 정책이 좀더 설득력있게 잘 받아들여질수 있다. 특히 LA화재 피해 복구 등을 위해 숙련된 건설인력이 대량으로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결단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불체 건설 노동자들의 헌신이 정치적 성향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재난 현장에서 이민자들은 집주인이 민주당인지, 공화당인지 소속을 따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최근 전국 이민포럼(National Immigration Forum , NIM)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과 “보수 성향 유권자의 76%가 비폭력 이민자 추방에 반대한다”는 결과는 이러한 인식 변화를 반영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토안보부의 최근 발표로 140만 명의 임시 합법 체류자들이 추방 위기에 직면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들이 재난 복구 현장에서 적절한 보호장비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9/11 테러 현장 청소 작업 후 암에 걸린 노동자들의 사례는 이들의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경종이다.
이민자들의 기여는 단순히 노동력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팬데믹 시기에도 필수 인력으로서 사회를 지탱했고, 이제는 재난 복구의 최전선에서 지역사회 재건을 이끌고 있다”고 전국 일용노동자 네트워크(National Day Laborers Organizing Network)의 파블로 알바라도(Pablo Alvarado) 국장은 지적한다. 그럼에도 이들 중 상당수가 FEMA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이민자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구성원이 되었다. 그들의 노력은 지역사회 복구의 원동력이 된다. 그들의 헌신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가 아닌, 존중과 보호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 통합의 시작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20년전 부시 대통령과 같은 결단을 기대해보는 것은 너무 무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