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37)
“우울해서 빵을 샀어!” 누군가 이렇게 말했을 때, “우울한데 왜 빵을 사?”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T(Thinking)란다. 웬만한 사람은 해 봤을 MBTI(성격 유형 검사 도구) 성격 유형 중, T는 어떤 일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 객관적 사실에 주목하여 분석적으로 판단하고, 원칙과 규범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유형이란다. 반면, F(Feeling)는 원리 원칙에 얽매이기보다는 인간적인 관계나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유형으로, “우울해서 빵을 샀어!”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왜 우울했어?”가 F의 대답일 것이다.
왜 사람들의 성격은 다를까? 예나 지금이나 ‘성격차이’가 이혼사유의 첫 번째라지만, 사람의 성격이 다양한 것은 진화론적으로 분명히 생존에 어떤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름을 알고, 그 다름이 좋아서 결혼한 부부도 많은데, 또 그 다름으로 이혼을 한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인 결혼은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형태가 변해왔다. 결혼이 그렇듯 가족의 의미와 형태도 변했다. 그럼,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겪는 아이의 감정은 어떨까?
영국 작가 애널레나 매커피가 쓰고, 전 세계 어린이의 사랑을 받는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을 그린 〈The Visitors Who Came To Stay〉는 이혼 후 새 가족을 맞아들이는 이야기다.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케이티는 아빠와 단둘이 산다. 장난감들이 자는 놀이방과 고양이조차 자기 방이 있는 아주 넓은 집에서 저녁마다 아빠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책을 읽고, 요일마다 정해진 메뉴로 만든 도시락을 갖고 학교에 가는,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생활을 케이티는 좋아한다. 때때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에 사는 엄마에게 갈 때를 빼면 언제나 아빠와 단둘이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새 가족이 될 메리 아줌마와 아줌마의 아들, 션이 집으로 온다. 요리에 서툴고 정리 정돈이 안 되는 메리 아줌마와 션의 짓궂은 장난을 참아야 하는 케이티는 이 손님들이 너무 불편하지만, 아빠는 즐거워 보인다. 메리 아줌마와 션이 아예 살러 왔을 때, 케이티는 넓었던 집이 좁게 느껴지고, 낯선 집안 분위기에 자신이 손님처럼 느껴진다. 주말에 다 함께 간 바닷가에서는 아빠와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던 평화로움은 사라졌고, 아빠는 메리 아줌마와 재잘대며 웃느라 케이티의 말을 듣지도 못한다.
케이티는 더 이상 집과 주말과 아빠를 나누어 갖고 싶지 않다고 아빠에게 말한다. 그리고 션과 메리 아줌마는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난다. 텅 빈 것처럼 조용해진 집에서 아빠와 단둘이 지내는 익숙한 생활을 되찾았지만, 케이티는 무언가 자꾸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메리 아줌마의 환한 웃음과 션의 짓궂은 장난이 그리워진다.
아빠와 단둘이 있는 케이티는 ‘좋다, 즐겁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림책의 전체 분위기는 쓸쓸하고 어둡다. 둘이서, 붙어 앉아 텔레비전을 볼 때, 텅 빈 역에서 기차를 기다릴 때,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을 때… 아무런 표정이 없는 아빠와 딸. 케이티는 변화가 두렵다.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엄마가 떠나는 것을 경험한 아이에게 변화는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는 괴물 같은 것이다. 자신의 허락 없이 갑자기 자신의 공간에 들어온 메리 아줌마와 션이 아빠마저 뺏어갈까 두렵다. 캐이티의 이런 내면을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엉뚱스레 표현했다. 사랑스럽고 예쁜 그림에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가득 담았다.
자신의 것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었을 때, 케이티는 아빠와 함께 메리 아줌마 집을 찾아간다. 그다음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이 새 가족이 MBTI 검사를 한다면, 케이티와 아빠는 내향적 T일 듯하고, 션과 메리 아줌마는 외향적 F일 듯하다. 요즘, 상대방에게 공감하지 못하거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너 T야?” 하는 말이 유행처럼 쓰인다. 도저히 이 유행어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 MBTI의 첫 번째 비판점이 이렇게 이분법으로 성격을 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T와 F 사이에는 수많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가족 사이에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