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 드라마’ 관세 협상, 멕시코·캐나다를 좌절시키다”(로이터 통신)
“세계는 트럼프의 채찍질 리더십에 지치기 시작했다”(CNN)
자고 나면 바뀌는 관세 정책, 동맹보다 돈을 앞세우는 거래주의. 예측을 불허하는 ‘트럼프 롤러코스터’가 전 세계 경제·안보 체제를 일대 혼란에 빠뜨리는 상황에 대한 6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의 반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멕시코·캐나다산 수입품 가운데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이 적용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내달 2일까지 면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4일 0시를 기해 관세가 발효된 지 이틀 만이다. USMCA는 1994년부터 시행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해 트럼프 1기 때인 2020년 7월부터 발효한 무역 협정이다.
“캐나다·멕시코 관세 다시 한달 면제”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에 관세 유예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당초 대통령 취임 후 ‘2월 4일 멕시코·캐나다 관세 25% 부과’를 공언했다가 하루 전날 “한 달간 유예”를 발표했었다. 이후 한 달 뒤인 지난 4일 양국 관세 25% 시행에 들어갔지만 하루 뒤인 5일 멕시코·캐나다에서 들어오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한 달 유예하겠다고 했다. 미 자동차 산업에 타격이 우려된다는 비판 여론 속에 나온 조치였다. 이어 6일 USMCA 적용 품목에 대해 내달 2일까지 다시 약 한 달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전체 품목 중 USMCA가 적용되는 품목의 비율은 멕시코산 수입품의 경우 약 절반, 캐나다산 수입품의 경우 38%라고 백악관 측은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오는 12일부터 적용하겠다고 한 철강·알루미늄 관세 25%에 대해서는 “조정하지 않는다. 다음 주에 예정대로 발효한다”고 했다. 또 “큰 건은 4월 2일에 하는 상호 관세”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교역 대상 각국의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4월 2일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해 왔다. 멕시코·캐나다에 한 달간 유예키로 한 관세, 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 역시 같은 날로 예고한 만큼 4월 2일이 ‘트럼프 관세 슈퍼데이’가 될 전망이다.
오락가락 관세…CNN “혼돈의 정부”
하지만 “더는 협상이 없다”고 한 발언을 스스로 뒤집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이 국내외 시장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CNN은 “혼돈의 정부(Government by chaos)가 되돌아왔다”며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과 괴롭힘에 대한 (각국의) 인내심이 점점 닳고 있다”고 짚었다.
초강경 고율 관세를 한껏 지른 다음 협상과 여론 상황에 따라 슬그머니 물러서는 패턴을 반복하며 실리 극대화를 추구하는 트럼프 전술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관세와 보복관세의 악순환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경제성장을 둔화하는 등 미국 기업에도 타격을 줄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펜타닐 유입을 막기 위한 것인가, 제조업 리쇼어링을 위한 것인가. 관세 전략을 더 명확하게 하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캐나다 외무장관 “사이코 드라마”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4일(현지시간)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51번째 주’라고 부르며 주권 훼손 논란을 부른 캐나다에서는 더욱 격한 비난이 이어졌다. “이런 사이코 드라마를 30일마다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 “자고 나면 골대를 바꾼다”(더그 포드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관세 정책 등 현안을 논의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의 통화에 대해선 소셜미디어에 “우리 관계는 매우 좋다. 우리는 불법 이민·펜타닐 유입 중단을 위해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우호적 감정을 표했다. 반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약 50분간 가진 통화에서는 격렬한 분위기 속에 욕설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트럼프, 나토에 “돈 안내면 방어 않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전통적 동맹 관계보다 철저하게 거래주의를 우선시하는 안보관도 재확인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겨냥해 “그들이 돈을 안 내면 그들을 방어하지 않겠다”며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유럽 국가들을 향해 “그들은 무역에서 미국에 바가지를 씌운다. 그런데도 우리는 돈을 줘 가며 그들을 보호한다”며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 방위에 나선다는 나토 핵심 원칙(제5조)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곤경에 처했을 때 프랑스나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보호할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토 헌장 5조가 유일하게 발동된 것은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공격을 받았을 때다. 나토 회원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동참하는 계기가 됐는데, 이 원칙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일본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거론하며 “우리는 일본과 좋은 관계지만 우리는 일본을 보호해야 하는 반면 일본은 우리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 일본은 우리에게서 큰돈을 버는데, 누가 이런 거래를 만들어놨냐”고도 했다. 동맹국인 유럽을 정조준해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고 일본을 콕 집어 양국 안보 조약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슷한 논리로 한국을 겨냥해서도 무차별 공세를 가할 거란 예상이 나온다.
미 재무장관 “동맹국에 경제압박 가능”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뉴욕 경제클럽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엄호하며 “미국의 적대국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비전에 동조하지 않는 동맹국들 역시 경제적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다른 국가의 경제 정책이 미국 경제와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면 반드시 대응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 우선 무역 정책”이라고 했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던 상식이나 관행을 깨뜨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광인 전략(Madman Strategy)’에 대해 CNN은 “트럼프의 지속적인 ‘우방국 괴롭히기’는 장기적으로 오히려 미국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미국의 위험은 트럼프의 장난이 4년 더 지속되면 미국의 지배에 대한 비전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계가 재편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