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복이 와요.”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 지고, 한번 화내면 한번 늙어진다.” 나도 그런 소리 많이 들으며 산 세대이다. 아직 젊었을 때 어느 날, 어려 서부터의 내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얼굴 표정이 웃는 얼굴도 아니고, 평안한 표정도 아니었다. 내 사진들 속에는 내가 살아온 어려웠던 역사가 그대로 반영되어 찡그리고, 경직된 얼굴 표정들이었다.
내 표정을 밝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려고 웃는 연습을 해보았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일 할 때 출근해서 제일 먼저 내 책상 맞은편 벽에 붙여 놓은 웃는 손녀의 사진을 보며, 나도 따라 웃는 연습을 했다. 일상에서 감사를 찾아보는 눈을 뜨자고 자작 시를 쓰고 매일 읽은 적도 있다.
웃으면 불치병도 고치고 막힌 혈관도 뚫는다고 주장하는 노만 카슨스의 책들도 읽었다. 지상에서도 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 늘 기쁘고 평안하고 무조건 사랑하는 수준으로 진화된 의식 수준의 사람들 얼굴은 늘 평안하고 웃는다. 의식 수준이 슬프고, 화나고, 오만한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과 기쁨과 평안이 없다고 하는 데이비드 호킨스의 책들도 읽었다. 성경에서도 성령의 열매가 익으면 늘 기쁘고, 늘 평안하고, 무조건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도 묵상했다.
어려서 오랜 세월 찡그리고 산 사람은 그 바탕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꼈다. 웃음 연습, 일상에서 감사를 찾아보는 연습을 통해 받은 은혜들로 내 얼굴 표정은 얼마나 평안하고 웃는 얼굴이 되었을까. 그래도 연습 전 보다는 좀 나아졌을 것이다.
최근 향우회에 참석했는데, 유난히 평안하고 웃는 얼굴이 보였다. 우리 세대의 한국 분들은 남녀 구분 없이 고된 세월을 살아온 흔적이 얼굴 표정에 어리는데, 그 여자분은 그런 그늘이 없이 밝고 평안해 보였다. “어떻게 저분은 고생의 흔적이 없이 밝고 웃는 얼굴일까. ” 호기심이 생겨 그분 가까이 가 보았다. 그 여자분은 다른 여자분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녀가 필요한 냅킨을 옆에 앉았던 남편분이 손에 쥐어 주었다. 알고 보니 여자분은 앞을 못 보는 분이었다. 아니 어떻게 앞을 못 보는 분의 얼굴 표정이 천사처럼 환하게 보이지, 저분은 어떻게 밝고 웃는 표정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한 교회의 시니어 프로그램에 참가했더니, 그 미스터리한 부부를 거기서 만났다. 점심시간에 그들 부부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부모님들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와서 정상적으로 대학 교육도 여기서 받고 결혼해서 첫아이를 출산할 즈음, 친정 엄마가 지어온 보약을 먹은 뒤 눈에 이상이 발견되어 침술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상태가 악화되자 에모리 병원 전문의 진찰과 치료를 받았으나 시력을 회복할 수 없어 시력을 잃었다고 했다. 그런 트라우마를 거치면서 어떻게 그 여자분은 편하고 웃는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내 궁금증은 답을 얻는 대신 더욱 커졌다.
시니어들을 위한 교회의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얼굴이 밝은 여 전도사님을 만났다. 그분은 지팡이를 짚고 쩔뚝거리며 다니는 환자인데 얼굴 표정이 밝게 웃는다. 그 전도사님이 ‘기쁨은 선택할 수 있는 선물이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항상 기뻐하라.’ 그 말씀이 설교의 핵심이었다.
전도사님을 따라 그녀의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생명이 위독한 친척을 뵈려고 한국에 다녀오며 다리에 병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의사들은 당뇨가 있는 분이 오랜 비행시간에 무리해서 병이 생겼다고 했다. 그분은 전에도 큰 교통 사고를 당해서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고 했다. 어떻게 이 분은 그런 고통을 넘어서 밝은 표정을 할 수 있을까.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더 가까이 간 결과일까.
최근에 만난 평안한 얼굴, 웃는 얼굴의 주인공 두 분은 다 병과 사고를 당해 절망의 깊은 골짜기를 헤맨 분들이다. 참 역설적이다. 절망의 깊은 골짜기를 헤맨 트라우마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걸로만 알았는데, 이분들은 트라우마를 통해 밝게 거듭난 것 같이 생각된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의 지도에 의하면 전세계 사람들 중 4%가 사랑의 단계, 지상에서 천국을 산다고 한다. 세계 인구 80억정도라는데, 3억이넘는 사람들이 지상에 살면서도 천국의 평안을 누린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만난 얼굴이 평안하고 웃는 두 분도 사랑의 단계로 의식이 진화되었다면, 그 단계로 오르는 수많은 길들 중에서 그들은 절망의 깊은 구렁텅이를 통해서도 빛의 단계로 갈 수 있다는 증거 같고, 지금도 절망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