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12
4월, 부활의 계절이다. 여름의 짙은 녹음을 머금고 겨울을 이겨낸 잎들이 여린 색으로 인사한다. 같은 나무의 잎들이건만 새로 나온 잎들은 전과 다르게 눈부시다. 다시 태어난다는 부활, 지난 시간을 담고 앞으로 나가는 시간의 문을 여는 것. 그건 계절의 바람이 불듯 변화하는 바람을 타는 일일게다.
영화 ‘두 교황’은 보수적인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인 후계자 프란치스코교황 (베르골리오추기경)-의 이야기이다. 신념이 다른 두사람이 교황청의 미래, 교회의 사명등으로 논쟁을 벌이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하며 변화 속에 융화되어 가는 내용을 담고있다. 특히 변화에 대한 두사람의 서로 다른 견해에 눈길이 가는 영화였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서거하자 추기경들이 콘클라베를 위해 모여 들었다. 후보자로는 개혁적인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리오와 교황청 실세였던 보수 성향의 라칭가가 거론되었다. 몇번의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서야 마침내 라칭거가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 결정되었다. 교황청의 창문으로 새 교황을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베르골리오는 개혁이 늦어질 것을 걱정하며 새 교황을 위해 기도한다.
어느덧 7년의 세월이 흘렀다. 베르골리오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성전과 거리를 가리지 않고 설교하며 신자들과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TV에서는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대한 무수한 음모론과 교구 신부의 성추문, 돈과 얽힌 교황청의 비리로 연일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고 종교계는 자성의 목소리로 들썩거렸다. 전통과 교리, 교회의 권위를 주장하는 보수적인 베네딕토는 개혁을 옹호했던 베르골리오를 떠올린다.
마침내 두 사람이 한자리에 앉았다. 교황은 교리를 무시하고 이혼한 사람에게 성체를 주는 일, 동성애를 옹호하는 발언 등 그동안 참아왔던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베르골리오는 성체는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며, 동성애 발언은 맥락이 잘린 채 잘못 인용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교회의 권위를 지키고자 교구 신부의 성추문을 벌하지 않은 것은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방치한 것이라고 강력한 어조로 비난한다. 두 사람이 상반된 신념으로 분위기가 뜨거워질 무렵, 교황의 시계에서 ‘Keep Moving’ 라는 알람소리가 울린다. 마치 기존의 교리에 안주하지 말고 일어나 앞으로 나가라는 주님의 목소리처럼 두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혼란한 세상과 같은 우거진 숲길을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어떤 흐름을 어떻게 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교황의 논쟁은 계속된다. 세상의 잣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타협이라는 베네딕토의 논리에, 베르골리오는 그것은 타협이 아니라 변화라고 말한다. 혼자 밥을 먹고 탱고가 아르헨티나의 춤이라는 것조차 모를 만큼 고립되었던 교황이 정원사와 수녀들과 이야기하고 파트너와 함께 탱고를 추는 베르골리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교황은 변화에 따른 새 물결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더이상 하느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자신의 고뇌를 베르골리오에게 솔직히 밝힌다. 베르골리오는 교황에게 일반 가게에서 파는 피자를 권하고 시스티나 성당의 신자들 사이를 걷게 한다. 그들 사이를 걸으며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교황은 행복해 한다. 아마도 이때 그는 그토록 들리지 않던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권위를 우선시 했던 자신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길로 들어선 것이다. 마침내 베네딕토 교황은 전통을 고수하는 마음을 내려 놓고 사임할 마음을 굳힌다. 2년 후 베르골리오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추대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가톨릭 역사상 700년 만에 교황직을 사임한 교황이다.
교황직은 종신직이며 죽기 전에는 그 자리를 내려 오지 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교회가 굳건히 걸어 잠근 문을 열기를 바라고 있었다. 베네딕트 교황은 사임이라는 변화를 만들어 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앞에 먼저 다가옴으로써 종교계의 새로운 장을 열수 있었다.
개인이나 사회나 우리는 모두 변화의 물결에 몸을 실어야 한다. 같은 나무지만 새로 태어난 새싹이 더욱 푸르듯 ‘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새것을 안다’ 는 ‘온고지신’ 의 마음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4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