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매장 석탄에 불 붙어
1962년 이후 아직도 안 꺼져
1만5000명 주민 전원 대피
번성했던 도시가 ‘폐허’로
세상에는 참으로 별난 곳도 많다. 도시 전체가 화마에 시달려 흔적조차 없어졌다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저주받은 마을, 또는 불타는 유령마을이라고도 불리는 펜실베이니아 중부의 작은 마을 센트레일리아(Centralia)가 바로 그 지역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을 굳이 찾아 가 본 사연은 이렇다. 현 애틀랜타중앙일보 이종호 대표가 몇 년 전 L A중앙일보 논설실장으로 있을 때 우연히 이곳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부터 도대체 어떤 곳일까 뇌리에서 지워지지를 않았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남북전쟁의 격전지 게티스버그를 여행하고 나서 불과 2주만에 다시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카고 공항에서도 펜실베이니아주 센트레일리아까지는 약 750마일이나 된다. 하루 종일 가도 다 못 가는 거리를 요즈음 세상에 인터넷 보고 쉽게 글을 쓸 수도 있으련만 고집이랄까, 집념이랄까 꼭 가 보고야 말겠다는 우직함을 스스로 원망도 해 가면서 달려갔다. 여기 저기 땅 속에서 연기가 솟고 땅이 갈라지며 도로의 아스팔트는 군데 군데 파도를 치며 푹푹 패이고 벗어놓은 신발이 녹을 정도라면 귀신도 곡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미국 땅에 그런 곳이 있다는데 명색이 미국 구석구석은 안 가본 곳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제 아무리 멀다고 해도 아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갖은 고생끝에 현장에 당도해 보니 짐작은 하고 왔지만 보기에도 도시 전체가 을씨년 스럽다. 당장이라도 땅이 꺼지지 않을까 걸음걸이 마다 조심스럽다. 1만5000명이나 살았다던 도시의 자취는 온데 간데 없고 낙서만 가득한 도로, 어수선한 가로수와 잡초들만이 옛날의 영화를 대변해 주는 듯했다. 집이 있던 자리는 거의 모두 철거하여 마치 바둑돌 없는 바둑판처럼 경계 표시만 선명히 남아있었다.
이걸 보려고 그 먼 길을 달려왔던가 일순 후회도 했다. 하지만 유람을 하다보면 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만 만날 수는 없는 법. 때론 이런 폐허도 만나고 볼거리는 없어도 사연이 특별한 곳도 한번쯤 찾아보는 게 호기심 많은 진정한 여행자의 도리가 아닐까 위안을 해본다.
센터레일리아 도시 가운데를 관통하는 도로가 61번 프리웨이인데 그 중 제일 심하게 균열이 간 곳은 그야말로 폭격의 현장이거나 엄청난 지진을 당하지 않고야 이럴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군데 군데 웅덩이가 생기질 않았나 도로가 쭉쭉 갈라지질 않나. 어쩔 수 없이 정부는 시 외곽으로 우회도로를 만들어 차량을 통행시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만나는 사람이라도 하나 있어야 사연을 물어보든지 할 텐데 인적 자체가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가슴을 끌어 안고 공동묘지 쪽으로 가고 있는데 마침 개 한마리와 함께 산책을 하던 존(John)이라는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 도시 주변으로 석탄 매장량이 엄청많아 1960년대 이전까지는 탄광업이 호황을 이루어 경제적으로도 풍성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평화스럽던 마을에 1962년 어느 날 마켓 쓰레기통에서 불이 났고 마을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바로 껐는데 3일뒤 또 불이 난 것이다. 이후 계속해서 불이 났지만 방화의 흔적도 없고 여기저기 지하에서 연기도 치솟았지만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
주 정부에서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진화에 전력투구하였지만 속수무책,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지하에 매장된 석탄 광맥에 불이 옮겨붙어 인력으로는 진화가 불가능하게 된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기술로는 진화가 불가능하며 지하 석탄 매장량 전체가 연소되려면 약 250년이나 걸릴 것으로 진단했다. 주 정부는 어쩔 수 없이 1983년부터 도시 전체를 매입하고 주민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이후 차마 고향 땅을 버리지 못한 사람 9명만(2007년 현재) 남았으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는 필자도 확인하지는 못했다.
사람 일도 한치 앞을 알수 없듯이 도시의 운명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그렇게 흥청망청 융성했던 옛날 로마 도시 폼페이도 화산 폭발로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이곳 센트레일리아를 둘러보면서도 원인은 다르지만 이렇게 대책없이 사라질 수도 있구나 싶어 오래도록 숙연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여행메모
실제로 방문하려면 시카고보다는 필라델피아 쪽에서 가는 게 훨씬 가깝다. 필라델피아에서 서북쪽으로 약 110마일, 중부 해리스버그에서는 60마일 남짓 거리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지나는 여행길에 한 번쯤은 들러볼 만 하다. 하지만 순전히 이곳만 보려고 나선다면 실망할 수도 있어 잘 생각해 볼 문제다. 애틀랜타에서 동부 쪽으로 장거리 대륙종단 자동차 여행을 계획한다면 워싱턴 DC거쳐 남북전쟁 격전지 게티스버그 등을 경유해 올라가면서 들러볼 수는 있겠다.
글, 사진 /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미주 중앙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미디어에 여행 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