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사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고 나아가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까지 받는 것. 모든 이민자의 꿈이다. 이를 위해 이민 1세대들은 열심히 땀 흘리며 터를 닦고 씨를 뿌린다. 당대에 안 되면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에 찬란히 피어날 꽃과 열매를 기대하며.
조지아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 약학대학 명예교수 주중광 박사도 그런 이민 1세대다. 하지만 주 박사는 탁월한 연구업적을 바탕으로 이미 당대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명사가 됐다. 대학 교수로는 이례적으로 경제적 성취까지 이루고 그것을 나누는 일에도 열심이다. 한인사회뿐 아니라 주류사회에서도 두루 존경받는 이유다. 지난 4월 29일 오후 둘루스 중앙일보 인근 조용한 카페에서 주 박사 내외를 만났다. 영화 ‘미나리’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둘루스 한인타운을 찾은 주중광 박사 부부. 둘은 서울대 동문 부부다. 부인 허지영 여사는 화학과(66학번)를 졸업했고 2017~2019년 애틀랜타 서울대 동문회장으로 봉사했다. 1970년 뉴욕주립대 버팔로에서 유학생으로 처음 만나 1973년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이번에 한국계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로 미국이 난리가 났었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윤여정씨는 74세 나이에 여우조연상까지 받았고요.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어려운 정착기라 할 수 있는데, 어떠셨어요?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제 보려고 합니다. 스토리는 많이 들었는데 저도 공감이 갔어요. 하지만 저처럼 유학생으로 와 공부 마치고 바로 주류 사회에 들어간 사람은 그런 어려움을 모르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도 있더군요.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야든 이민자가 주류사회에 비슷하게라도 따라가려면 두세 배 더 땀을 흘려야 하거든요. 언어 장벽은 물론이고 알게 모르게 차별도 존재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이겨내느냐 하는 것이지요.”
– 박사님은 그런 길을 헤치고 세계적인 약학자로 우뚝 서셨는데, 어떤 연구를 주로 하셨나요?
“전문적인 내용이라 다 설명하기는 그렇고, 에이즈 치료제나 B형, C형 간염 치료제 개발 및 관련 신약 연구에 힘을 보탰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대학에서 40여년간 줄곧 연구하고 가르쳤죠.”
주 박사는 1964년 서울대 약학과 졸업 후 아이다호 주립대 석사(1970)를 거쳐 뉴욕 주립대 버펄로에서 박사(1974) 학위를 받았다. 1976년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 연구원을 시작으로 아이다호 주립대 조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지금까지 조지아대학에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까지 350여 편의 논문, 60여 건의 미국 특허, 130여명의 대학원생 및 박사 후 연구원 양성이라는 학문적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조지아대 약대(College of Pharmacy) 웹사이트에는 주 교수의 연구 업적과 수상 내용이 몇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국제적인 공헌을 인정받은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존 몽고메리 어워드(The John A. Montgomery Award, 2014)를 비롯해 안토닌 홀리 어워드(Antonin Holy Award,2017)of Inventors, 2017) 등이다. 자랑스러운 서울대인(2015), 뉴욕주립대 버펄로 탁월한 동문(2017)으로도 선정됐다.
40여년 연구·후학 양성 외길
간염 치료제로 세계적 명성
연 45만불 미 7개 대학 후원
주류사회에 소수계 위상 높여
– 장학재단을 통해 많은 기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2011년 아내(허지영)와 함께 주패밀리재단(The Chu Family Foundation)을 만들었습니다. 이 재단을 통해 저나 제 가족과 연관이 있는 미국내 여러 대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Chu Lectureship Award’라 해서 약학 및 신약개발에 우수한 성과를 낸 과학자들을 위한 상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고요.”
–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 얼마나 지원하시는지요?
“매년 45만 달러 정도씩 장학금이나 연구기금을 후원합니다. 미국의 비영리재단 규정상 전체 자산의 5%는 기부하게 되어 있거든요. 조지아대학을 비롯해 아이오와대학, 뉴욕 버팔로, 듀크, 유펜 등 7개 대학이지요.”
-그 정도 규모라면 재단 규모 또한 대단하겠군요. 실례지만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버셨나요? 대학에서 연구만 하신 과학자로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렇죠. 흔한 일은 아니지요. 열심히 연구하고, 후학들을 많이 배출하다 보니 기회가 왔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산학협력 연구인데, 대학에서 연구 개발한 것을 상품화해서 인류 복지 증진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가 배출한 제자만 130여명입니다. 그들이 회사를 만들어 그런 일들을 하곤 했는데 저도 관여하게 되면서 소득이 생긴 거지요. 그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재단을 만든 겁니다.”
– 기부 대상이 미국 대학이나 주류사회 기관들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요. 물론 ‘봐라, 나 같은 이민자도 이렇게 당당히 미국을 돕고 있지 않느냐’라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미국에선 이민자나 소수계를 늘 도움만 받는 집단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걸 깨뜨리고 싶었습니다. 소수계도 주류사회 못지않게 미국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중요한 말씀이네요. 후학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겠군요.
“예.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삶의 자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다들 이재에 밝고 경제에도 민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돈만 좇지 말라, 우선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 돈은 그 다음에 저절로 따라 온다. 그리고 돈을 벌었다면 제대로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요.”
– 공감합니다. 주 박사님의 삶 자체가 그런 정신을 구현하고 있으니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교인 서울대에도 거액을 기부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것도 재단을 통해서였나요?
“아, 그건 아닙니다. 미국 비영리 재단의 해외 지원은 규정이 더 까다롭기 때문에 서울대 기부는 개인적으로 따로 합니다. 또 6.25 참전용사 후손들을 위해서도 매년 10~15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데 역시 따로 하고 있고요”
주 박사 부부는 장인이었던 허식 수학과 교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9년 서울대 자연대에 3억원(약30만달러)를 기부했다. 그들은 그 전에 이미 30억원 기부 약정을 하고 약대 시설확충 기금 등 다양한 명목으로 서울대에 기부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 총 기부액은 250만 달러가 넘는다.
-끝으로 애틀랜타 한인 커뮤니티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교회를 나가니까 한인사회 소식을 많이 듣습니다. 한인 신문도 열심히 읽고요. 한인들이 워낙 부지런해서 이민 생활에 잘들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려울 때 조금씩 손을 내밀면 큰 힘이 되겠지요.”
주 박사는 틈틈이 한인사회에도 기부를 해왔다.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해 5월에는 불숙 애틀랜타한인회를 찾아 한인동포들을 위해 써 달라며 1만 달러를 기탁했다. 또 한미장학재단 남부지부(회장 이영진) 기금 조성에도 적극 참여, 후학들을 길러내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다.
▶ 주중광 박사
1941년생. 어린 나이에 강원도, 부산, 평택 등지로 피란 다니며 6.25를 직접 체험했다. 서울대 약학과 졸업(1964) 후 아이다호 주립대 석사(1970), 뉴욕 주립대 버팔로 박사(1974) 공부 이후 조지아대학 약대 교수로 40년 간 후학 양성과 신약개발에 헌신하고 있다. 지금도 명예교수(Emeritus)로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이름은 데이비드(David Chu)다.
관련기사 – 주 패밀리, 한인회관 보수 위해 40만불 쾌척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