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8배 면적에 투표소는 4곳…투표하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
제20대 한국 대통령선거 재외선거가 지난 23일 시작된 가운데 애틀랜타 투표소에서 영주권 카드 원본을 지참하지 않아 헛걸음을 하는 상황이 여러차례 벌어졌다.
24일 애틀랜타 총영사관 관할 지역에서 현재까지 영주권카드 원본을 지참하지 않아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 한인 유권자만 5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사관측은 필요한 신분증 서류를 지참할 것을 공고를 통해 수차례 알렸고, 이메일로 개별 발송된 재외투표 안내문을 통해 비자 원본 혹은 영주권 등의 국적 확인서류를 지참할 것을 통지했다는 입장이다.
강승완 선거영사는 영주권카드 원본 지참이 필수인 이유에 대해 “유효한 한국 여권을 갖고 있다 해도 여권 발급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사례가 있었다”라며 “한국 여권이 정확한 국적 확인 서류는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전선거등록과 선거일 사이에 시민권을 채택한 한인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꼭 영주권 원본 등 지참서류를 가져와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온·오프라인으로 재외선거를 위한 사전 선거등록까지 했는데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신분 확인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다수 한인들은 한국 국적을 사전 유권자 등록 과정에서 판별했으니 대한민국 여권, 미국 운전면허증 등 본인 확인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투표 첫날 조지아주 어거스타에서 2시간을 운전해 온 김모씨는 영주권 카드 원본을 가져오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는 “두시간을 운전해 왔는데 투표도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라며 “영주권 카드 원본이 필요한지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영주권카드를 지참하지 않아 두번 투표장을 찾은 박모씨는 “재외거주자 투표신고를 받았을 때 국적을 확인했으면 됐지 여권을 지참했는데도 영주권이 없어서 투표를 못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바란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인사회에서는 투표소 부족에 더해 필요 이상의 신분 확인 절차로 재외동포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애틀랜타 재외선거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재외선거 투표소는 애틀랜타, 몽고메리, 올랜도, 랄리 4곳에 불과하다.
반면 애틀랜타 총영사관 관할 지역은 조지아, 앨라배마,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와 중미지역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이다. 조지아주만해도 한국의 1.5배, 플로리다주는 1.7배에 달하는 등 남동부 6개주를 모두 합치면 한국의 8배에 달한다.
이에 따라 투표소가 설치된 도시를 제외하면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5~6시간을 운전해야 겨우 투표소에 도착할 수 있다. 한인 유권자들의 거주지역은 이렇게 넓은데 선관위는 투표소 4곳만 설치해 놓고 재외동포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한다고 홍보하는 실정이다.
미주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우편투표를 도입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이지만 한국 국회에서는 몇년째 법안 심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애틀랜타의 한 한인 교수는 “투표 여건을 제대로 마련해주지 않고 말로만 투표를 장려하지 실상은 미주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박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