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2년 전 애틀랜타 부임, 사회복지 서비스 등 지역 봉사
스와니에 3에이커 부지 확보, 새 법당 건립 위해 바쁜 나날
원불교는 조지아 한인들에겐 비교적 덜 알려진 종교다. 하지만 한국에선 기독교, 불교, 천주교와 함께 4대 종교에 속한다. 오래전 미국에도 진출했고 애틀랜타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 교당이 있다.
최근 스와니에 있는 원불교 애틀랜타 교당에서 박진은 교무를 만났다. 교무란 원불교 성직자로 목사, 신부, 스님 같은 직분이다.
-원불교라 하면 불교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때 저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불교는 불교인데 새로운 불교다, 과거 산속에 있던 불교를 시대에 맞게, 생활에 맞게, 대중적인 종교로 개혁한 새로운 종교다, 라고요. 그러니까 원불교는 불교의 한 종파가 아닌 전혀 새로운 종교입니다.”
-그럼에도 불교와 관계는 있을 것 같은데요.
“먼 뿌리가 불교이긴 합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을 인류의 큰 스승으로 받들고는 있지만,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원불교는 형상이 없는 진리 그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수행하는 종교입니다.”
박진은 교무의 말대로 원불교는 불교라는 말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기존 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다. 일제 치하였던 1915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창시했다. 4월 28일 대각개교절이 가장 큰 기념일이다.
불교 사찰에는 불상이 있지만 원불교 교당에는 동그라미 형상의 일원상이 있다. 일원상은 진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존 종교가 예수, 석가 등 구체적인 신앙 대상을 가진 데 반해 원불교는 진리라는 추상을 신앙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박진은 교무가 법당에서 경종을 치고 있다. 아래는 목탁.
– 원불교는 신이나 성인이 아닌 ‘진리’라는 추상을 믿는다는 말씀이신데요, 조금 어렵습니다.
“원불교의 기본 교리는 사람은 모두 4가지 큰 은혜를 입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네 가지 은혜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자력양성(自力養成), 지자본위(智者本位), 타자녀교육(他者女敎育), 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라는 4가지를 실천합니다. 풀어 설명하면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지혜를 추구하며, 교육을 하고, 바른길을 가는 사람을 받드는 것입니다.”
– 한 번 들어 바로 이해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리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한인사회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애틀랜타 원불교 교당은 언제 생겼나요?
“2005년에 시작됐으니 올해로 17년째네요. 전임 교무께서 개척하시고, 2009년에는 지금의 스와니에 부지까지 마련했습니다. 이후 그분이 퇴임하신 뒤 뉴욕에 있던 제가 2020년에 새로 부임했습니다.”
– 교당에 나오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요?
“지금은 10가정 정도 됩니다. 교당 앞을 지나다가 입간판을 보고, 혹은 피어 있는 연꽃을 보고 들렀다가 등록하신 분들입니다. 그들이 또 친구나 지인을 소개해서 데리고 왔고요. 다들 재미있게 공부하고 교제하고 있습니다.”
-무슨 공부를 하나요?
“원불교는 일체의 차별이 없습니다. 남녀차별, 인종차별, 교육차별, 빈부차별 등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유일한 차별이 있다면 지자(智者)와 우자(愚者)의 차별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음을 떨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원불교의 가장 중요한 공부입니다.”
– 애틀랜타에 17년이나 됐는데 아직 원불교 교당 자체를 모르는 한인들이 많습니다. 한인사회에 다가가려는 움직임이 적어서가 아닐까요?
“그런 면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꾸준히 한인사회와의 접점을 넓혀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저도 코로나 기간 중임에도 매주 한인회관 나가서 노인회 봉사나 음식배달 등을 돕고 있고요. 앞으로는 복지관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 복지관이면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요?
“메디케어나 소셜 연금, 세금보고 등 사회복지 관련 상담입니다. 또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한국학교도 생각하고 있고요. 외국인을 위한 선이나 요가 교실도 구상 중입니다. 애틀랜타 부임 전 뉴욕에서 오랫동안 제가 해 왔던 것들이라 익숙하고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원불교는 원광복지관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지역사회 ‘교화’에 힘쓰고 있다. 뉴욕 등 타 지역 원광복지관은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 상담과 세금보고 대행 등을 주로 한다. 또 원광한국학교를 열어 한글과 한국문화 등도 가르치고 있다.
스와니에 있는 원불교 교당. 뒤에 딸린 3에이커의 부지에 새로 법당을 신축할 계획이다.
– 외국인이 원불교 교당을 어떻게 알고 찾아올까요?
“요즘 동양 문화, 특히 한국적인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한류나 K팝, 드라마 등의 유행도 그런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고요. 한글이나 한국 문화는 물론 요가, 명상 등 동양적인 것을 가르치고 전파하는데 원불교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 기대되는군요. 하지만 웬만큼 인력과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지원받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원불교 교당은 어디든 기본적으로 스스로 하는 것, 자력양성이 원칙입니다. 다만 애틀랜타처럼 신생 교당은 아무래도 자리가 잡힐 때까지 조금 넉넉한 교구에서 지원을 받아야겠지요.”
– 넉넉한 교구라면 한국에서 지원이 있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미주는 최근 한국 원불교에서 따로 독립해 미국 원불교 총부가 되었습니다. 그 아래에 동부, 서부 교구가 있고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3개국에도 교구가 있습니다. 미주에도 최고 어른인 종법사가 있고요, 교당마다 교무가 파송되는 시스템이지요. 그러니까 교구 차원에서 서로 돕는다는 말입니다. 교무 중에는 외국인 교무도 있습니다. 영어권 포교를 위해 필라델피아에 원불교 성직자 양성 학교도 운영하고 있는데 모두 거기 출신이지요.”
– 미주는 미주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래도 한국과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원불교가 한국의 민족종교로 출발한 것이니까요. 한국 교도들의 관심이 큽니다. 조지아 포교를 위해 애틀랜타에 제대로 된 법당을 건축하라며 성금도 보내주시고요. 어깨가 무겁습니다.”
– 지금 건물이 있는데 따로 교당을 건축하신다는 건가요?
“예, 정식 법당은 아니니까요. 신축 불사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동참 인연을 찾아 권선하고 있고요. 지금 이곳 땅이 3에이커 정도 됩니다. 거기다 제대로 짓겠다는 겁니다. 이미 조감도도 나와 있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건축허가 신청을 했지만, 소화전 설치 문제로 지연되었는데, 최근 바로 옆에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해결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건비와 자재비가 오르긴 했지만 머지않아 첫 삽을 뜰 수 있도록 정진하고 있습니다.”
스와니에 새로 건축하게 될 원불교 법당 조감도.
-개인적인 질문도 좀 드리겠습니다. 교무 중에는 결혼 한 사람도 있고 안 한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박 교무님은 어느 쪽인가요?
“원불교 성직자의 결혼 여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저는 일찍 결혼해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아내는 간호사로 일하고요, 애들은 현재 대학생, 고등학생입니다. 아무래도 성직자이다 보니 가족에게 경제적 풍요를 채워주지 못한 부분이 늘 미안하지요.”
– 뉴욕에서 오셨는데 애틀랜타 교당의 임기가 있나요?
“원칙적으로는 3년입니다만 미주 지역은 대체 교무 파송이 쉽지 않아서 오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도 애틀랜타 오기 전 뉴욕에서만 17년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역하느라 늘 바빴는데 여기 와서도 똑같이 바쁘네요. 낮에는 밭도 일구고 법당 건립 준비로도 바쁘고요. 원불교 수행자로서 아침저녁 기도도 해야하고, 일요일 법회 준비도 하거든요. 법회는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있습니다.”
– 끝으로 한인 사회에서 원불교의 역할을 찾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사회를 떠나 종교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역사회 봉사를 통해 생활 종교의 역할을 다하려 합니다. 한말씀 더 덧붙인다면 원불교는 열린 종교입니다. 어떤 종교와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한국이나 미국 타 도시에선 스님, 목사님, 신부님들과 대화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전통을 살려 한인 커뮤니티 다양성과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박 교무와의 대화는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그는 시종일관 온화하고 다감했지만, 다양성과 소통을 이야기할 때는 더 진지했다.
부임 직후 교당 이전을 위해 건물을 알아보다가 원불교 성직자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한 경험도 들려줬다. 그 일로 한인사회가 아직은 많이 보수적이라는 것과 원불교가 감당할 역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미국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말도 했다. 맞는 말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그것이 오늘날 미국을 세계 최강의 대국으로 만든 저력이었다. 이는 한인들도 잘 안다. 하지만 막상 한인사회가 그것을 똑같이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특히 정치나 종교 쪽이 더 그렇다. 원불교 애틀랜타 교당이 한인사회의 다양성을 높이고 불통의 벽을 허무는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박진은 교무는…
1966년생이다. 중학교 졸업 후 원불교 재단 고등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 게 계기가 되어 원불교를 알게 됐다. 교무가 되기 위해 대학원 다니던 시절, 모스크바로 자원봉사 갔다가 미국서 온 한 교무로부터 도미 제안을 받고1998년 미국에 왔다.이후 계속 뉴욕에서 사역했다. 애틀랜타에는 2020년 부임했다.
글 ·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