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북쪽 두시간 거리
정상 서면 4개 주가 한눈에
전망대 오르는 길 걷기좋고
드라이브 코스로도 훌륭해
#. 미국은 큰 나라다. 풍습 다르고 지리 다른 50개 주가 모여 연방 국가를 이뤘다. 50개 주엔 저마다 가장 높은 산이 있다. 그 산을 모조리 다녀온 사람이 있다. LA 사는 산악인 김평식씨다. 여러 산악회장을 많이 해서 LA 산악인들 사이에선 왕회장으로 통한다. 그는 그냥 다니기만 한 게 아니다. 일일이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을 정리해 미주중앙일보에 오랫동안 연재하며 한인들에게 등산과 여행의 즐거움을 일깨웠다. 나중엔 그것을 묶어 책으로도 냈다. ‘미국 50개 주 최고봉에 서다(2009, 포북 출판사)가 그것이다.
여행 다니기 좋아하는 내가 최근 10년 동안 가장 많이 들춰본 여행 책을 꼽으라면 단연 이 책이다. 덕분에 나도 미국 구석구석 꽤 다녔다. 책에 소개된 곳, 저자가 가 본 곳을 나도 한 번씩은 가보고 싶어서였다.
김평식 회장은 1940년생, 올해 여든두 살이다. 나와는 20년 이상 나이 차가 있지만 ‘친구’ 같은 어르신이다. 지난해 이맘때였다. 김 회장이 LA 떠나 애틀랜타로 간 ‘친구’ 보겠다며 조지아를 방문했다. 반가운 해후 끝에 의기투합해 책에 소개된 조지아 최고봉을 함께 찾아갔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반도 최고봉 백두산을 동경하듯, 아니면 남한 최고봉 한라산이라도 가 보고 싶어 하듯, 조지아 살면 누구나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한다는 최고봉, 브래스타운 볼드다.
지난해 갔을 때는 날이 몹시 궂었다. 4월인데도 비가 오고 산정에는 진눈깨비까지 날렸다. 전망대에 올라가서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많이 아쉬웠고 오래도록 미련이 남았다. 그 아쉬움을 씻으려 올봄 다시 찾아갔다. 이번엔 혼자였다. 날씨도 좋았다. 두 번에 걸친 조지아 최고봉 방문기를 이제야 쓴다.
#. 브래스타운 볼드(Brasstown Bald)는 해발 4784피트(1458m)다. 브래스타운은 지명이고 ‘볼드’는 360도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탁 트인 산꼭대기를 말한다. 브래스타운의 브래스는 황동이란 뜻이다. 금관악기 합주단 ‘브라스밴드’ 할 때의 바로 그 단어다.
원래 이 지역은 원주민 체로키 인디언들이 늘 푸른 나무가 많은 땅이라 해서 ‘초록의 땅(Green Place)’이라 불렀다. 하지만 백인 이주민들은 비슷한 발음의 다른 말로 알아들었다. 그게 황동이란 단어였다. 백인들은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 이름을 황동 마을, 브래스타운이라 불렀다. 조지아 북부 산동네에 뜬금없이 황동 마을이 탄생한 배경이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조지아에 가장 흔한 지명인 피치트리(peach tree)가 그것이다. 남북전쟁 때 격전지였던 피치트리 크리크(Peachtree Creek)라는 이름이 발단이다. 그 지역은 소나무 군락지였다. 끈끈한 송진(pitch)이 많이 났다. 체로키 부족은 ‘서 있는 피치트리(Standing Pitchtree)’라는 뜻의 말로 그 곳을 불렀다. 이게 잘못 전달되면서 비슷한 발음의 복숭아 나무 피치트리(peach tree)로 둔갑했다. 이후 조지아의 길, 땅, 개울 곳곳에 피치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지아주 별명까지 피치 스테이트(Peach State)가 됐다. (조지아가 주요 복숭아 산지이긴 하지만 미국 최대 복숭아 생산지는 캘리포니아주다. 그 뒤를 사우스캐롤라이나, 뉴저지가 따르고 조지아는 그 다음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다시 산 이야기로 돌아가자. 브래스타운은 4700피트가 넘는 조지아 최고봉이지만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망대까지 길이 잘 나 있어서 차로 턱밑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다.
브래스타운 볼드 정상 주차장 입구. 오른쪽 봉우리 위로 전망대가 보인다.
차에 앉아 편히 간다고 쭈뼛댈 것 없다. 가는 길은 조지아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다. 그것만으로도 먼 길 나온 보람이 있다. 특히 연방 공원관리국이 야생 보호구역(Wilderness)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는 브래스타운 볼드 주변은 빼어난 산세뿐 아니라 전형적인 남부 시골의 소박함과 평화로움까지 선사한다. 조지아주도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지 곳곳에 ‘시닉 바이웨이(Scenic Byway)’라는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브래스타운볼드 가는 길은 훌륭한 드라이브 코스다. 이를 알리는 조지아 시닉 바이웨이 표지판.
브래스타운 볼드 방문자센터로 올라가는 마지막 2마일은 몹시 가파르고 꼬불꼬불하다. 조심조심 차를 몰아 끝까지 올라가면 매표소가 나오고 200~300대는 충분히 댈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이 펼쳐진다. 주차장 주변으로 화장실과 기념품 가게가 있고 야외 피크닉 테이블도 곳곳에 있다. 한나절 소풍 나오기에 좋겠다 싶다. 전 조지아주 대법관 토머스 S. 캔들러(Thomas S. Candler:1890~1971) 추모비도 눈길을 끈다. 캔들러는 브래스타운 볼드를 알리기 위해 헌신한 사람이라고 한다.
주차장 옆 기념품 가게 옆에 있는 전 조지아 대법관 추모비.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15인승 쯤 되는 셔틀버스가 다닌다. 방문객 대부분은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걷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념품 가게 옆에서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서밋 트레일(Summit Trail)을 통하면 15~20분이면 올라간다. 나는 작년엔 셔틀버스를 탔지만 이번에는 걸었다. 많이 가파르긴 했지만 길이가 0.6마일밖에 안 되는 짧은 길이었다. 걷기 편하게 포장도 되어 있고 중간중간 식물도감 같은 안내판도 있어 읽어가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가 나타났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이르는 서밋 트레일. 왕복 1마일 짧은 코스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오가는 셔틀버스. 덕분에 휠체어 탄 사람도 조지아 최고봉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좀 더 제대로 등산을 하고 싶다면 아예 산 아랫마을 영 해리스(Young Harris)에서 시작되는 왜건 트레인 트레일(Wagon Train Trail)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정상까지는 편도 7마일, 왕복 6시간 이상 걸리는 길이다. 이 길은 1950년대 죄수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지만 지금은 등산객과 말만 통행이 허용된다.
산 아랫마을에서 브래스타운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왜건 트레인 트레일. 편도 7마일 거리다.
전망대는 조지아 최고봉답게 위풍당당하다. 사방팔방 막힘이 없다. 애팔래치안 산맥 너머 멀리 북쪽, 동쪽으로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하이아와시(Haiawassee) 마을 채투지 호수(Chatuge Lake)가 만들어 내는 경치가 한 폭의 그림이다. 채투지 호수는 1942년 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남쪽, 서쪽으로는 조지아의 크고 높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지난 주 소개했던 요나마운틴도 뚜렷이 보인다. 전망대 위로 우뚝 솟은 타워는 기상 관측과 산불감시를 위한 시설이라는데 작년에도, 올해도 굳게 잠겨 있었다. 직접 올라가 보진 못했지만 사진 배경으로는 훌륭했다.
전망대 위엔 기상관측 및 산불 감시를 위한 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최고봉 전망을 실컷 즐긴 다음엔 1층 방문자센터 전시관도 꼭 둘러봐야 한다. 한다. 원주민 체로키 부족의 역사와 생활, 야생동물 박제, 19세기 벌목 현장을 누비던 기관차 등이 볼 만하다.
브래스타운 볼드 방문자센터. 원주민 역사와 야생동물 박제 등이 전시돼 있다.
#. 다시 미국 50개 주 최고봉 이야기다. 기회 되면 한 번씩 가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몇 곳만 적어둔다.
▶알래스카 최고봉은 마운트 드날리(Denali)다. 미국 전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전에는 매킨리였지만 원주민의 오랜 청원을 받아들여 2015년부터 드날리가 됐다. 매킨리는 등산을 좋아했던 미국의 25대 대통령 이름이고 드날리는 ‘신성하다, 위대하다’는 뜻의 알래스카 원주민 단어다. 해발 20,320피트(6194m).
▶캘리포니아 최고봉은 마운트 휘트니(Mt. Whitney)다. 해발 14,505피트(4421m). 하와이, 알래스카를 뺀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히말라야나 남미 고봉 등정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고지 적응훈련 장소로도 유명하다.
▶플로리다에 있는 브리튼 힐(Britton Hill)은 50개 주 최고봉 중 가장 낮은 봉우리다. 해발높이가 345피트(105m)에 불과하다. 봉우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높이지만 최고봉은 최고봉이다. 플로리다 서북쪽 끝 앨라배마 접경지에 있는 레이크우드 공원 안에 있다. 그밖에 조지아 인접 4개 주의 최고봉은 다음과 같다.
▶앨라배마주 최고봉은 치하마운틴(Cheaha Mountain)이다. 해발 2413피트(735m). 치하는 원주민 언어로 높다는 뜻이다. ▶테네시주는 클링먼스 돔(Clingman’s Dome)으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 안에 있다. 높이는 6643피트(2025m). ▶노스캐롤라이나 최고봉은 마운트 미첼(Mt. Mitchell)이다. 6684피트(2037m). 세계 최대 민간 저택 빌트모어 하우스로 유명한 애쉬빌에서 멀지 않다. 블루리지 파크웨이를 이용하면 정상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가장 높은 곳은 노스캐롤라이나 접경지역에 있는 사사프라스 마운틴(Sassafras Mountain)이다. 해발 3,554피트(1083m). 애팔래치안 산맥의 일부인 블루리지 산맥에 속해 있다.
지난 해 13년 만에 조지아 최고봉을 찾은 김평식 회장(오른쪽)과 함께 한 필자.
#. 메모 : 브래스타운 볼드는 둘루스 한인타운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거리다. 입장료는 1인당 7달러로 주차비, 셔틀버스 요금 포함이다. 이번에 가 보니 1년 새 2달러가 올랐다. 연방 공원관리국 관할이어서 국립공원 1년 패스(America the Beautiful)도 통용된다. 브래스타운 볼드에서 북쪽으로 30마일 정도 가면 노스캐롤라이나 주다. 유명한 블루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kwy)도 멀지 않다.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