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2월 셋째 주 월요일은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이다.
시에나 대학은 1982년부터 대통령 전문학자 230여 명이 대통령 개인의 배경과 지도력, 국정 능력 등 20가지 요건을 바탕으로 평가해 미국을 빛낸 위대한 대통령을 발표해 오고 있다.
그 결과를 보면 아브라함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조지 워싱턴 등 3명이 늘 상위를 차지한다. 이들이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모두 난세에 위기로부터 나라를 건진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링컨은 ‘원칙의 리더십’으로 추앙을 받는다.
그는 노예해방과 연방 유지라는 두 가지 큰 업적을 남겼다.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던 정책들을 관철해 낸 것은 무엇보다 원칙을 중시하는 자세와 리더십 덕분이었다. 어찌 보면 링컨의 리더십은 단순했다. 최고 지도자가 된 그는 학연, 지연, 혈연에 전혀 좌우되지 않았다. 그 덕에 최고의 드림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링컨은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웠던 윌리엄 시워드 뉴욕주 상원의원을 삼고초려 끝에 국무장관으로 발탁했다. 시워드는 링컨을 사사건건 무시했던 인물이었다. 또 자신을 ‘기린과 원숭이 같은 존재’라고 비난했던 선배 변호사 에드윈 스텐턴을 전쟁장관으로, 자신의 권위에 늘 도전했던 새먼 체이스 오하이오 주지사를 재무장관으로 각각 임명했다.
이에 대해 참모들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극력 반대했다. 그러나 링컨은 “이런 바보 짓은 수천 번이라도 할 수 있다”며 일축했다.
루스벨트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많은 이가 그가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찬양한다. 하지만 이런 업적들은 그의 소통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루스벨트의 경우 대공황이란 초유의 위기에다 야당인 공화당이 의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게다가 언론도 적대적이었다.
루스벨트는 그럼에도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초유의 경제위기에서 국가를 구해 내기 위해 독특한 소통의 방식을 개발했다. 제대로 걷지 못했던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동현장을 찾곤 했다.
그는 재임 기간에 1000번 이상 기자회견을 했다. 매주 두 번꼴이었다. 기자회견에 임하는 자세도 특이했다. 그는 절대 사전 답변서를 준비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기자들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답하는 살아 있는 소통이 이뤄지도록 배려했다.
주요 사안이 있을 때면 라디오방송을 통해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다. 난롯가에서 친구들에게 얘기하듯 친근하게 설명한다는 의미의 ‘노변정담’이란 용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워싱턴의 통치 스타일은 ‘합리적이고 절제된 리더십’으로 압축할 수 있다.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신생국가의 초석을 바로 놓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직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 때문에 워싱턴은 이따금 곤경에 빠지곤 했다. 그럼에도 정직함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으려는 원칙 덕택에 초기에 형편없이 불리했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워싱턴은 자신의 퇴임 연설에서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정책이라는 말은 개인 생활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공공분야에도 들어맞는 격언”이라고 역설했다. 두 번의 임기 후에는 ‘내가 할 일은 다했다’며 종신 대통령으로 남아 달라는 국민의 요청을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농장을 경영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의 슬로건은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였다. 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172석의 거대 민주당이 가로막고 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훼방을 놓는다. 역대 어느 정부도 겪은 바 없는 적대적 환경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법치주의를 희롱한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독재 앞에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무력하기만 하다. 대선에서 분패한 민주당은 공격적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파의 모든 정책을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로 무장해 정권 탈환을 노린다. 출범도 하지 않은 윤석열 정부를 연일 공격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는 새 정부 앞길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들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그의 행동은 정반대다. 상대 정파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해 적대시하고 자신을 정의와 무오류의 화신으로 자화자찬하는 유사 파시스트적 행태를 임기 마지막까지 반복했다. 5년 내내 적과 동지의 이분법과 미증유의 무능으로 민생을 파탄 낸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도 맹목적 정치 팬덤을 누리는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타락을 증언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의 정당이 다른 상태가 분점정부(分占政府)다. 게다가 윤 정부는 절반을 훌쩍 넘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차기 총선까지 2년간 더 견뎌야만 하는 열악한 처지다. 결과는 초박빙이었지만 20대 대선 민심에선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 여론을 줄곧 압도했다.
민주당 집권 연장을 거부한 민심이 윤 정부에 바란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 독재로 궤도 이탈한 대한민국을 제 자리에 돌려놓으라는 요구다. 문 정부는 민주 제도를 악용해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것이 현대판 독재자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법의 지배’는 권력자가 법을 통치 수단으로 악용하는 ‘법에 의한 지배’를 거부한다. 검수완박 법안은 힘센 자들이 결탁해 ‘법에 의한 지배’를 노린 반민주적 악법의 결정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21세기 공화 혁명의 시대정신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으로 승화되어야만 한다. 공화 혁명의 지상 명제인 협치와 공존은 이념·세대·지역·진영·성별로 쪼개진 한국 사회를 치유할 처방전이다.
그러나 협치와 공존을 내세워 민주주의 파괴 범죄에 눈감아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 오늘의 시대정신이 거악을 벤 검객 출신 정치 신인을 대통령으로 불러 올렸다. 공화정의 적을 혁파하라는 준엄한 시대의 부름에 윤 대통령이 침묵한다면 역사의 소명을 배반하는 것이다.
아무리 거대 민주당이 가로막더라도 ‘도둑’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망가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가 우선 해야 할 일이다. 그의 뒤에는 많은 지지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