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년 동안 주위에서 알던 분들이 많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되었다. 교인들 장례식 소식을 주보에서 볼 때 마다, 신문에 보고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 숫자가 믿어졌다. 그런데 예방 접종을 꼬박꼬박 한 내가 감염될 줄은 몰랐다.
한 주 전 화요일 골프를 마쳤을 때 몸이 좀 불편하기 시작했다. “낮 최고 온도가 100도가 넘었는데, 더위 먹은 것 아냐?” 아내가 말했다. 둘이 다 같이 아프면 더 불편하니까 내가 잠자리를 객실로 옮겼다. 밤에 기침이 나고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아프고, 목구멍도 아팠다. 아침에 집에 있는 코로나 테스트를 써 보았다. 그림의 지시대로, 면봉으로 콧구멍을 후벼 약물 속에 넣어 휘젓고 그 약물 세 방울을 판에 떨어트렸다. 15분이 지났다. 결과 해설서에 보니, 네거티브? 좀 의심스러웠다.
그래, 전에도 그랬었지. 늘 건강하다 가도 한 번 감기 몸살 앓으면 아주 모질게 앓았지! 그게 내 스타일 감기 몸살 앓는 방법이야! 그런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수요일 밤도 기침에 목구멍이 아팠다. 금요일 아침 공원 걷는 일행과 만나야 하는데, 다시 한번 코빅테스트를 했다. 똑 같은 과정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아 이럴 수가! 포지티브, 감염이 확실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둘러 카톡으로 소식을 공원 걷는 팀에게 전했다. 몸살감긴 줄 알았는데 코빅 감염 테스트에 포지티브로 나와 못 참가합니다. 토요일에 있는 교회 셀미팅에도 못 참석한다고 전했다. 교회 찬양대에도 같은 내용을 보냈다.
가정 의사선생님께 전화상담을 했다. 감기몸살 같다고 느낀 것이 4일 전, 오늘 아침엔 많이 회복된 느낌이라고. 지금은 효과가 아주 좋은 약이 나와서 처음 시작될 때 복용하면 고생 덜하고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고통이 심한 고비는 넘긴 것 같으니, 목이 아프지 않고 기침을 줄이는 약만 처방해 달라고 했다.
몸이 아파 집에서 누워만 있으니, 갑자기 쓰지 않은 넓적다리와 종아리에 쥐가 나고 저릿저릿했다. 운동을 왜 안 하느냐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오하이오 살 때 2주동안 허리 수술로 입원했던 친구분의 어머니를 본 생각이 퍼뜩 떠 올랐다. 그분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였다. 2주동안 안 쓴 탓에 휠체어에 앉은 새 다리 같이 가느다란 다리, 안 써서 없어진 근육의 산 증거였다.
정기적으로 일주에 3번 가는 체육관이 근육운동엔 편하고 좋아 가고 싶은데, 감염자인 내가 가면 다른 사람들이 감염될 수 있다. 탁구를 치러 갈수 도 없다. 골프도 같이 칠수 없다.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박 재란 씨의 옛 노래가 생각났다: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 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왜 그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 지, 못 맺을 운명 속에 몸부림 치는, 병들은 내 가슴에 비가 내린다.” 나야 말로 갑작스럽게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운동을 하고싶어도 못하고 있다. 모처럼 몇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나눴다.
뉴저지 큰 아들 가족들이 파더스 데이 점심식사 가는 차 속에서 전화를 했다. 아들 내외와 손녀 둘이 한 목소리로 “해피 파더스데이 그랜파”를 부르짖었다. “고마워. 오늘 아침에 큰 파더스 데이 선물을 받았어.” “뭘 누구 한태 받았는데요?” “아침에 잠에서 깨서, 컨디션이 평소처럼 회복되었어. 삶의 활력을 선물로 받은 느낌이야.” 차에서 환호의 웃음 소리, 특히 손녀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감염소식에, 내 나이를 생각하며 각별히 조심하라던 큰 아들도 안심하는 모양이었다.
교우 한 가정이 음식을 우리 집 앞에 놓고 갔다. 음식하기도 귀찮은 아내와 치즈와 고기로 속이 찬 빵과 딸기, 수박을 먹으니, 사각사각 씹을 때 마다 음식을 보내주신 분에 대한 고마움이 음식의 단맛보다 더 달아 오래오래 씹는다.
팬데믹 시작 후 감염자 사망율이 현재 가장 낮은 이유는 사회 전반적으로 면역력이 증가해서라고 한다. 내가 가볍게 넘기는 이유가 4번이나 맞은 예방 접종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엔 나 외에도 많은 분들이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지만, 쉽게 이겨내고, 바이러스와 실전을 통한 경험으로 항체가 더 생겨 더욱 건강 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