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의 전성기를 연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이다. 그렇지만 당 태종, 인간 이세민은 천하의 패륜아였다. 제위에 오르기 위해 이세민은 현무문에서 태자였던 형 건성과 동생 원길을 살해하고 아비를 겁박했다. 뿐만 아니라 이세민은 동생 원길의 부인을 후궁으로 들어앉히기까지 했다. 패륜아 이세민이 어떻게 중국 역사상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되었을까. 그 비결은 열린 정치와 소통의 리더십이었다. 적이라 해도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인재라면 적극 받아들였다. 당태종은 특유의 포용력으로 다양한 인재를 보듬었다. 그의 휘하에는 한때 적이었던 유무주·설거·두건덕·왕세충 등의 부하로 있던 인물이 매우 많았다.
당태종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신하들의 간언밖에 없음을 통찰하고 있었다. 윗사람에게 아랫사람이 직언을 하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군주 스스로 열린 마음으로 언로를 크게 열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당태종은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고는 이후 상주하는 관원을 접견할 때마다 안색을 부드럽게 했다. 신하들의 직언과 간쟁을 통해 정치교화의 득실을 알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이 바른 도리로 간할 때는 반드시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였다. 법도에 맞게 직언해 군주의 부족함을 메우는 신하들에게는 늘 포상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관 초 태종은 대신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사람이 자기 얼굴을 보려면 반드시 맑은 거울이 있어야 하고, 군주가 자기의 허물을 알려면 반드시 충직한 신하에 의지해야 한다. 대신들은 내가 백성에게 불리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거리낌 없이 직언하여 비판해야 한다.”
이처럼 태종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 나서 간언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주변은 바른말을 하는 신하들로 가득 찼다. 위징이 대표적이었다. 위징은 박학다식하고 지혜로웠으며 직선적이고 배짱이 두둑했다. 원래 태종의 형이었던 태자 이건성의 핵심 참모였다. ‘현무문의 변’이 있은 후 이세민은 위징을 불러내어 질책했다. “너는 우리 형제를 이간시킨 자렸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더냐?”위징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대답했다.“건성 황태자께서 만약 징(위징)의 말에 따랐더라면 반드시 오늘과 같은 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징의 말’은 건성의 첨모로 있을 때 세민을 죽여 버려야 한다고 말한 그 말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말투였다. 패자로서 이 같은 발언을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위징은 이 같은 말을 입에 담은 이상 죽음을 각오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태종은 위징을 용서하고 첨사주부의 벼슬을 내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태종은 그런 인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세민은 위징을 국사로 인정하여 용서하고 위징은 그 은혜를 느끼어 태종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위징이 병으로 죽는 순간까지 태종과 위징은 물과 고기처럼 어울렸다.
신하된 자로서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보다 고마운 존재는 없다. 누구라도 그런 군주를 위해서라면 분골쇄신하게 된다. 위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몸이 아파도 쉴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사직을 청했지만 그때마다 태종은 위징의 손을 잡으며 ‘당신이 떠나면 천하를 바로 다스릴 수 없다’고 만류했다. 일신의 평온함을 위해 군주의 청을 뿌리치기에는 그의 은혜가 너무 컸다. 위징이 죽었을 때 태종은 위징을 위해 직접 비문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한탄했다.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짐은 일찍이 이 세 종류의 거울로 스스로 허물을 범하는 것을 방지해왔다. 지금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것이다.”
지도자의 자리는 외롭다. 한 나라의 운명을 움직이든, 한 조직의 우두머리든, 지도자라는 직업은 피를 말린다. 쿠바위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던 1962년 10월 16일,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잔뜩 긴장한 언론사 편집장들 앞에서 생뚱맞게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오르테가의 시를 읊었다.
투우 구경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거대한 광장을 빽빽이 메운 채/그러나 황소와 싸우는/단 한 사람은 바로 그다’
때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소련에서 출발한 열여섯 척의 미사일 적재 선단이 미국의 코앞 쿠바를 향해 항진 중이었다. 미국 군부 강경파들은 카리브해에 들어서기 전 선제공격을 하라며 허약한 비주류 대통령을 윽박질렀다. 케네디는 3차 세계 대전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한없이 외로운 케네디는 그 순간 시를 읽었다. 광장을 메운, 고함지르는 이들은 모두 구경꾼이고 황소와 싸우는 것은 대통령 오직 하나뿐이라는 걸 절감했다. 최종 선택은 오로지 지도자만의 몫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케네디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뒤따라온 미국의 번영과 동서 화해는 성공한 대통령이 내린 선물이었다.
지금 윤 대통령을 보면 사납게 달려드는 황소 앞에 선 외로운 투우사의 모습이다. 번번이 사건 뒤처리에 매달려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 터지면 그리 달려가고 저기 막히면 그리 몰려간다. 주변을 둘러봐야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야당 쪽에는 아는 사람 없고 자기편의 제갈공명도 없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왜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시기에 그를 대통령으로 불러들였을까. 초심으로 돌아가 그 답을 구해야 한다. 일대 쇄신만이 그 답일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은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상응해 국력을 집중한 사람이다.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대통령이란 자리에 집착하고 천착한 사람 치고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신출의 ‘어쩌다 대통령’이 더 좋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 총선 승리 전까지는‘임시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황소 앞에 선 투우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