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숲 속 넓은 하천 신기하고
조붓한 오솔길 옆 연못도 탄성
옛 제지공장 터는 국립사적지
날이 부쩍 차가워졌다. 화려하던 단풍잔치도 끝나고 몇 잎 남지 않은 마지막 낙엽마저 지고 있다. 싱싱했던 나뭇잎들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이 사뭇 엄숙하고 진지하다. 이즈음이면 숲속 길바닥엔 떨어진 낙엽들이 두툼하게 깔리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진다.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다. 멀리 높은 산 깊은 골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추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 오늘 소개할 캅카운티 마리에타 인근 소프크릭이다.
소프크릭을 찾은 주민들이 낙엽 쌓인 트레일을 거닐고 있다.
채터후치강은 조지아주의 젖줄이다. 애틀랜타 북쪽 도심 구간 대부분은 연방 공원관리국에서 관리하는 국립휴양지역(CRNRA)에 속한다. 강 주변으로 걷기 좋은 하이킹 코스도 곳곳에 있다. 캅카운티 중심 마리에타 동쪽에 위치한 소프크릭(Sope Creek)도 그 중 하나다.
소프크릭은 마리에타에서 발원해 채터후치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제법 큰 하천이다. 총 길이는 11.6마일(18.7km). 소프크릭의 ‘소프’는 원주민 체로키 부족의 인물 이름으로 원래 철자는 비누와 같은 ‘soap’였지만 언제부턴가 ‘sope’로 바뀌었다고 한다.
단풍 물든 나무 사이로 낙엽 쌓인 트레일을 걷다보면 만추의 정취에 흠뻑 젖는다.
소프크릭이 있는 ‘이스트 캅’ 지역은 애틀랜타 근교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힌다. 동쪽으로 채터후치강, 서쪽은 마리에타, 남쪽은 샌디스프링스, 북쪽은 라즈웰에 둘러싸여 있다. 주민 소득이 높고 교육 환경이 빼어나 캅카운티에서 별도의 시(市)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오랫동안 있어 온 곳이다. 하지만 애틀랜타에 속한 부촌 벅헤드가 독립하려고 계속 애썼지만 쉽지 않은 것처럼 이스트 캅도 아직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년 넘게 이스트 캅에 살고 있다는 한 지인은 “유대인들을 비롯한 전통 부자들이 많이 산다, 학군 좋고 조용하고 전원적인 분위기가 좋아 한 번 자리 잡은 사람들은 잘 떠나지 않는다”며 지역 분위기를 일러주었다. 그는 또 “이곳 주민들은 어디 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소가 마리에타임에도 열에 예닐곱은 ‘이스트 캅’에 산다고 말한다, 그만큼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바위 사이로 콸콸 흐르는 너른 물줄기가 울창한 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이룬다.
참고로 캅카운티(Cobb County)는 풀턴, 귀넷, 디캡 카운티와 함께 메트로 애틀랜타를 구성하는 빅4 카운티 중 하나다. 1832년에 설립됐으며 마리에타가 중심 도시다. 캅카운티 이름은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한 토머스 윌리스 캅(Thomas Willis Cobb)에서 따 왔다. 마리에타 시 이름도 그의 아내 메어리(Mary)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캅카운티는 남북전쟁 격전지 케네소 마운틴과 미국 유수의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의 폭격기 생산 공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메이저리그 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구장도 마리에타에 있다. 2022년 현재 캅카운티 인구는 약 77만 명이며 백인 48.2%. 흑인 26.1%, 히스패닉(라티노) 14.5%이며 아시안은 5.6%다.
소프크릭 트레일헤드 입구. 마리에타 페이퍼 밀 로드 선상에 있다.
소프크릭 트레일은 캅카운티의 숨은 보석이다. 가서 걸어 보면 나무가 울창하고 넓은 하천과 바위, 콸콸 흐르는 물줄기까지 애틀랜타 인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트레일은 얼기설기 복잡하지만 바깥쪽으로 따라 돌면 약 3마일 둘레길(루프)로 한 시간이면 걸을 수 있다. 바위 많은 물가와 제지공장 유적지, 숲속 호수 등 명소들까지 여유롭게 둘러봐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소프크릭 남쪽으로는 채터후치 강변의 유명한 코크란 쇼얼스 트레일이 바로 연결돼 있어 10마일 이상 서너 시간 걷기도 가능하다.
조붓한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 시블리폰드.
소프크릭 하이킹은 보통 페이퍼 밀 로드 선상의 트레일 헤드(3726 Paper Mill Rd. SE, Marietta, GA 30067)에서 시작한다. 주차장 찾아 가는 길이 오지 산길처럼 꼬불꼬불해서 ‘소프크릭’ 표지판을 잘 살펴야 입구를 놓치지 않는다. 주차장은 50여대 공간밖에 없어 휴일에는 차를 못 대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소프크릭은 개를 데리고 갈 수 있지만 목줄은 꼭 매야 한다.
길도 좀 넓히고 주차 공간도 더 확보하면 좋을 텐데 소프크릭이 자꾸 더 알려지는 것을 주민들이 달가워하지 않아 시행을 못한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으니 꼭꼭 숨겨놓고 혼자만 즐기고 싶어하는 이곳 사람들 욕심을 탓할 필요는 없겠다.
소프크릭 트레일엔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방해받지 않으려면 ‘노 바이크’ 길로 걸으면 된다.
소프크릭 하이킹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시블리폰드(Sibley Pond)와 페이퍼 밀 유적지(Paper Mill Ruins)다. 시블리폰드는 주자창에서 조금만 내려가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호수 같은 연못이다. (대개 lake(호수)는 pond(연못)보다 넓고 깊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다. 들고 나는 물줄기가 있으면 lake, 물이 드나드는 곳 없이 고여 있는 곳을 pond로 구분하기도 한다) 거울처럼 맑은 물속까지 들어가 있는 주변 풍광들에 감탄하며 연못을 한 바퀴 돌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소프크릭 숲 속에 쳐 놓은 해먹 위로 개 세 마리가 올라가 놀고 있다.
페이퍼 밀 유적지는 소프크릭 물가에 자리 잡은 옛 제지공장 터다. 이 주변엔 18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곳 하천 물을 이용하는 공장이 여럿 들어섰는데 마리에타 페이퍼 밀(Marietta Paper Mills)이라는 제지공장도 그중 하나였다. 여기서 생산된 종이는 남부연합의 지폐 제조에 사용됐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공장은 남북전쟁 때 북군에 의해 사정없이 파괴됐고 지금은 건물 기초와 벽 일부 잔해만 남아있다.
옛날 제지공장 유적지로 이어지는 밀 루인스 트레일 안내판.
이곳은 1973년 ‘Sope Creek Paper Mill Ruins’라는 이름으로 연방 사적지(Historic Places)로 지정되면서 지역 명소가 됐다. 이곳을 지나는 간선 도로 ‘페이퍼 밀 로드’도 이 공장 이름에서 유래됐다. 위치는 트레일 헤드 주차장에서 밀 루인스 트레일을 따라 약 0.5마일 거리에 있다. 소프크릭을 지나는 페이퍼 밀 로드 다리 바로 아래에 있어 찻길을 따라가도 나온다.
옛 제지공장 잔해. 소프크릭을 지나는 페이퍼 밀 로드 다리 바로 아래에 있다.
한인 밀집 지역인 둘루스나 존스크릭, 스와니에서 차로 30~40분이면 갈 수 있다. 주차비 5달러. 국립휴양지구여서 국립공원 연간 패스(America the Beautiful)로도 주차 가능하다. 채터후치 강변 코크란 쇼어스 트레일에서도 갈 수 있다. 소프크릭까지는 왕복 약 10마일,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소프크릭 트레일 헤드 주소 : 3726 Paper Mill Rd. SE, Marietta, GA 30067
▶코크란 쇼얼스 트레일 헤드 주소 : 1956 Eugene Gunby Rd, Marietta, GA 30067
소프크릭 트레일 지도. 남쪽으로 채터후치 강변 코크란 쇼얼스 트레일과 연결된다.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