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간 아버지, 학대한 새 아버지, 빈곤 등 어린시절 역경”
전라북도 전주에서 주한미군 병사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흑인 여성이 네바다주 대법관이 됐다.
스티브 시설랙 네바다 주지사는 라스베이거스 소재 법무법인 허치슨 앤드 스테펀의 파트너 변호사인 패트리샤 리(Patricia Lee·47)를 주 대법관으로 임명했다고 21일 밝혔다.
흑인 여성이나 아시아계 미국인이 네바다주 대법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설랙 주지사는 주 법관인선위원회가 지명한 후보 3명이 모두 워낙 훌륭해서 결정이 매우 어려웠다면서, 이 중 리 대법관을 택한 이유로 “그가 지닌 능력의 폭과 깊이, 그리고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경험”을 꼽았다.
리 대법관은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학부에서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복수전공했으며, 이 대학의 흑인학생회에서 회장을 지냈다.
그는 이어 조지워싱턴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부터 허치슨 앤드 스테펀에서 일해 왔다.
리 대법관의 결혼 전 성은 톰슨(Thompson)이었으나 2006년에 비즈니스 컨설팅 사업을 하는 남편 로니 리와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따랐다. 자녀는 둘이다.
리 대법관은 전문 송무 분야인 복잡한 상업소송을 주로 담당했으나, 특허법과 가족법 소송도 맡았다.
네바다주 법관인선위원회에 제출된 대법관 후보자 답변서에 따르면 리 대법관은 한국 전라북도 전주에서 흑인 주한미군 병사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흑인이었기 때문에, 내가 태어난 것은 한국에서 못마땅한 일로 여겨졌고 ‘혼혈’이라며 비난을 받았다”고 답변서에 썼다.
그가 만 4세일 때 가족이 한국을 떠나 캘리포니아주 소재 반덴버그 공군기지로 이사했으며, 그 후 아버지가 군 생활을 접고 퇴역했다.
리 대법관은 자신이 만 7세였을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가 집을 떠났으며, 그 후로 자신이 어머니와 두 남동생을 데리고 힘겨운 삶을 헤쳐나가야 했다고 회고했다.
어머니는 영어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장녀인 리 대법관이 기초생활수급 서류를 작성하는 등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잠에서 깨면 침대에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꼴을 늘상 봤으며, 그나마도 집세를 못 내서 매년 평균 두세 차례씩 셋집에서 쫓겨나고 쉼터를 전전해야 했다.
어머니가 남성 반려자를 찾았으나, 이 남성은 리 대법관을 학대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리 대법관은 15세 때 가출해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3학년 전교 학생회장과 응원단장을 맡고 전교 최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했다.
리 대법관은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역경을 계기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아직도 그 결심을 잊지 않고 있다고 답변서에 썼다.
리 대법관은 올해 9월에 사직한 애비 실버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됐으며, 임기는 2025년 1월까지다. 리 대법관이 연임을 하려면 2024년으로 예정된 선거에서 당선돼야 한다. 리 대법관은 민주당이나 공화당 당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무소속 인사다.
정원이 7명인 네바다주 대법관은 원래 짝수 해마다 선거로 2∼3명씩 선출되며 임기는 6년씩이지만, 결원이 생기면 주지사가 임명하는 후임자가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