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주에 기아, SK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줄지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가운데 민간 가교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박선근(80) 한미우호협회장의 아메리칸 드림 성공기를 애틀랜타 저널(AJC)이 소개했다.
신문은 22일자 ‘사업가의 아메리칸 드림은 한국 전쟁 중의 어린시절 시작됐다’ 란 제목(온라인 뉴스 제목. 지면 기사 제목은 As a child in Korea, Park dreamed big) 의 기사에서 “박 회장의 성공의 원동력은 한국전을 겪은 어린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박 회장은 1974년 32세의 나이에 인디애나주에 첫 발을 내디뎠다. 주머니 속에는 단돈 200달러 밖에 없었다. 식당 주방 일부터 시작, 생명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이 된 그는 미국 도착 4년 만에 임신 8개월 된 아내와 4살배기 딸을 데리고 애틀랜타 뷰포드 하이웨이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후 수십년간 주정부 관리, 대학, 단체 등의 자문 역할을 담당했으며, 한인사회 비즈니스 리더로 성공했다.
그는 지금도 커머스 시에 있는 SK 배터리의 자문위원회 일원이다. 한미우호협회를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소니 퍼듀 전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 현 주지사 자문역을 하면서 양국간 가교 역할을 해왔다.
그는 1983년 창업, 23개 주에 3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제너럴 빌딩 메인트넌스사를 지난 7월 수백만 달러에 매각하고, 지금은 주정부와 한국기업 자문역과 강연 등을 하며 지내고 있다.
조지아 항만청 부청장을 지냈으며, 조지아의 기아차 공장 유치에도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조지아주의 10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그가 미국에서의 삶을 꿈꾸기 시작한 건 9살 때부터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미군들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한국에서 목숨을 잃었고, 내 눈앞에서 죽는 걸 보았다”고 회고했다. 어려움을 딛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우리를 도와준 미국에 대한 보답이자 어린시절에 가졌던 영감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조지아주립대 경영학석사(MBA) 과정 학생들이나 문제 청소년생들에게 강연을 할 때 이렇게 말한다. “영어를 하지 못하던 사람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못할 이유가 있는가? 내가 할 수 있으면, 여러분도 할 수 있다.”
김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