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10)
작년과 다르게 올해 몽고메리 단풍은 참 예뻤다.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여름처럼 더워지기를 반복하더니, 그 영향인지 나뭇잎이 정말 가을답게 물들었다. 스스로 옮겨 다니지 못하고 한자리에만 서있는 나무지만, 나무에게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있는 것이다. 새보다 더 자유롭게 거처를 옮겨 다닐 수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더 다양한 모습이 있고, 그 모습들을 어떻게 보여주며 살아갈까 생각해 본다.
〈Yoon and the Christmas Mitten〉(사진) 이 책은 저번에 소개했던 〈내 이름은 윤〉의 작가인 헬렌 레코비의 한국아이 윤의 또 다른 이야기다.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 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던 윤은 학교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해 배우고 산타클로스에게 선물받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윤의 부모님은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전통이 아니며, 소원은 설날에 친척들과 함께 비는 것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캐롤송을 배운 윤은 부모님 몰래 빵과 방울로 나무를 장식하기도 하고 예쁜 벙어리장갑을 침대 옆에 걸어두며 산타클로스를 기다린다.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부모님께 윤은 “미국이 우리 집이라 면서 왜 나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그 물음에 윤의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내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불 속에서 잠든 척 하는 윤의 방에 그림자가 살금살금 다녀갔고, 아침에 윤은 원하던 빨강 드레스가 든 선물상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윤의 벙어리장갑 속에는 빨강 선이 그려진 지팡이사탕이 들어있다. 윤은 달콤한 크리스마스의 마술을 경험한 것이다.
이제 미국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윤이 한국문화와 달라도 미국에서는 미국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가르치는 내용으로 읽힌다.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어린 딸과, 낯선 문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더디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부모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문화란 환경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생활양식이나 상징구조이다. 문화를 만들어 내는 한 요소에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도 클 것이다. 앨라배마 몽고메리에 현대자동차가 세워지고 한인들이 늘어가면서 몽고메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를 달리는 차 중에 현대차가 정말 많아졌다. 미국인이 사는 옆집 차고에 현대차가 2대씩 세워져 있어도 하나도 낯설지 않다. 한인이 많아져서 인지 한국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자주 보인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만나는 미국인 중에는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다. 도서관과 서점에서 한국과 관련된 책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고, 영어가 좀 서툴러도 깔보거나 하는 무례도 줄어든 것 같다. 머나먼 앨라배마 몽고메리에 고향 같은 문화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문화를 대할 때, 갖지 말아야 할 자세가 자문화 중심주의이다. 자기문화만을 좋다고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문화가 잘 보이지도 않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이나 강대국의 문화만을 추종하려는 문화 사대주의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화를 배울 기회를 막는다. 세상은 다양성으로 채워져 있고, 이 다양성 또한 계속 변화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자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끝없이 배우고 실천해가는 자세인 듯하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대나무살을 엮어 만든 커다란 별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트리 재료가 별로 없었던 시골에서 아버지는 대나무살로 별모양을 만들고 창호지를 붙이고 그 속에 전구를 넣어 대문 앞에 걸어두셨다. 산타할아버지는 안 왔지만,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온가족이 성탄 예배를 드렸다. 지금도 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착한 어른이 되기를 갈망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크리스마스는 한국에서 특별한 축제일이었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만 조금씩 변화해 온 것이다.
한국 아이 ‘윤’의 미국생활 이야기를 쓰고 있는 헬렌 레코비 작가를 만나게 되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국에는 크리스마스에 별을 다는 부모도 있고 석가탄신일에 연등을 다는 부모도 있지만 축제일의 의미는 같다고. 문화의 다양성을 설명하기는 정말 어렵다. 말부터 배워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