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설날을 전후해 캘리포니아에서 두건의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충격적인 점은 총격범 2명이 모두 65세된 아시안 노인이고, 피해자들 대다수도 중국계 아시안 노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을 열심히 살고 이제 황혼기를 맞이한 노인들이 무슨 이유에서 같은 동포들에게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또 비명에 가야 했을까? 이 사건은 그동안 숨겨진 아시안 노인들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먼저 총격사건으로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총격 피해자 상당수가 늙은 나이에도 아직도 막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월 23일 캘리포니아주 하프문베이(Half Moon Bay) 총격사건의 사상자 8명은 모두 농장 노동자였다. 사망자 6명이 중국계였고, 이중 70대가 2명, 60대가 2명이었다. 이제 은퇴해서 손자들이나 돌봐줄 60-70대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에게도 힘든 농장 막노동을 하다 총에 맞은 간 것이다.
사실 이런 현실은 한인사회도 남의 현실이 아니다. 열심히 살고 은퇴생활을 즐기는 노인들도 많지만, 60-70살이 되도록 노구를 이끌고 새벽같이 비즈니스 문을 열고 하루종일 일하는 한인 노인들도 아직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영리단체 LA인도적이민자권리연합(Coalition for Humane Immigrant Rights Los Angeles ,CHIRLA)의 리타 메디나(Rita Medina) 부국장은 현행 이민제도와 복지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중국계 등 많은 아시안들은 영주권, 시민권을 받으려면 10여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는 실정이다.
이민 쿼터 때문에 중국, 필리핀계는 다른 국가보다 영주권 문호가 좁기 때문이다. 영주권, 시민권이 없으니 나이를 먹어도 소셜시큐리티(SSI)를 받지 못하고 늙은 나이에도 먹고살려고 막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서류비미 노인(undocumented)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정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영주권, 시민권을 받아도 각종 베네핏을 받으려면 10년 이상의 납세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기록이 부족한 사람들은 SSI가 없으니 생계를 위해 늙은 나이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두번째로 밝혀진 사실은 노인들의 숨겨진 트라우마(Hidden traumas)이다. 두 사건의 총격범인 65세 노인들은 중국계 난민이었을 확률이 높다. 대다수 미국인들과 2세들은, 아시안 노인들이 2차대전, 한국전쟁, 문화대혁명, 베트남 전쟁, 킬링필드 등 수많은 전쟁의 아픔을 겪고 미국으로 왔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마오쩌둥 치하의 공산주의 중국을 탈출한 중국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작가 헬렌 지아(Helen Zia) 씨는 “아시안 노인들 상당수는 난민, 망명자로 미국에 왔고, 전쟁, 기아, 학살 등 끔찍한 일을 겪었다”며 “그러나 이들은 자식들에게 이러한 경험을 숨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캄보디아-화교계 운동가 로라 섬(Laura Som) 씨도 “캄보디아 인들은 폴 포트(Pol Pot) 정권의 학살과 전쟁을 겪으며, 주류사회에 말못하는 정신적 상처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쟁과 군사독재, 베트남전쟁을 겪은 한인 노인들에게도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아픔은 남의 일이 아니다.
과도한 노동과 정신적 트라우마는 결국 아시안 노인들의 고독과 소외감(isolation and loneliness)으로 연결된다. 캘리포니아주 한인 노인아파트에서 소셜워커로 주로 일했던 린다 윤(Linda Yoon) 씨는 “혼자 사시는 한인 여성 노인분들은 상담하다가 대부분 울음을 터뜨렸다”며 “자신의 고통이나 감정을 나같은 젊은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부끄러워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현재 옐로우체어 콜렉티브(Yellow Chair Collective)라는 단체를 만들고 노인 정신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1년간 성당에서 무료 음식 나눔 봉사를 하는데, 음식을 가져가시는 분들 상당수가 어르신들이었다. 도움이 필요한데 누구에게 말못하는 어르신들이 상당수 있음을 알수가 있었다. 말못하는 아픔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한 한인사회의 배려와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