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폐허된 서울 아름다운 도시 탈바꿈…공산주의 막기 위해 참전”
“형도 해군 조종사로 한국전 참전…한국전 추모의 벽을 방문하고 축복받은 기분”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내 동료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올해 98세인 노장의 기억은 또렷했다. 한국전쟁 참전 당시를 마치 어제 일처럼 회고하는 그는 다만 27세 혈기 왕성한 청년에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노인으로 외형만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은 25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태극 무공훈장을 받았다.
윌리엄스 대령은 행사 직후 워싱턴DC 호텔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훈장 서훈에 기쁨을 표하며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기쁘고 인상 깊으며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한국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면서 “서울은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로 바뀌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단 두 개였는데 이제는 20여개의 다리가 있고 도시 자체가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의 느낌을 한 마디로 “와우”라고 표현했다.
윌리엄스 대령은 한국전쟁 때 해군 중위 계급의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는 1952년 11월 회령 지역에 출몰한 옛 소련 미그기 7대를 상대로 공중전을 벌여 홀로 4대를 격추한 전설적인 해군 파일럿이다.
주변에선 그를 ‘원조 탑건’이라고 부른다. 실제 그는 전역한 뒤에는 후배 조종사 교육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 1953년에 미국 정부의 은성무공훈장을, 올해 1월엔 미 해군십자훈장을 받았다. 최고 훈격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 수훈도 추진 중이다.
윌리엄스 대령은 회령 전투를 회고하며 “북쪽에서 날아온 전투기들의 공격으로 기체가 상당히 훼손됐고, 마지막에는 탄약도 떨어졌었다”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그는 “위·아래로 저공과 고공 비행을 번갈아 하며 적기를 따돌렸다”며 “착륙 장치가 이미 고장난 상태여서 바다에 떨어지면 군함에서 구조대를 보낼 것으로 생각했지만, 구사일생 끝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며 생과 사를 오간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나는 그때 27세에 불과했지만 이미 2차 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다”며 “한국 상황에 대해서도 역시 해군 조종사인 형이 참전 중이어서, 배치 이전에 이미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임무는 명확했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며 “당시 공산주의 세력은 동쪽으로 진출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이 악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공산당의 진출을 막고 싶었다”고 밝혔다.
윌리엄스 대령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한미 동맹에 대해선 그간 많은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쉬운 것은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지목했다.
윌리엄스 대령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고조하고 있고, 우리는 그 위험성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며 “한때 지정학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는데, 남·북은 천연자원을 비롯해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하나로 합치지 못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정치와 그 추한 수괴들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며 “이는 매우 실망스러우면서도 위험한 일이다.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두고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날 행사에서 윤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한 그는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며 “환상적인 행사였다.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 좋았다”고 밝혔다.
윌리엄스 대령은 워싱턴DC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 지난해 세워진 추모의 벽을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거론했다.
그는 일부 전사자들의 이름에서 오류가 발견됐다는 보도에 대해선 “보도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서 “추모의 벽을 방문하고 축복받은 기분이었다. 워싱턴에 여러 기념물이 있지만, 이곳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새겨진 명단 가운데 동료들의 이름도 찾아보았다는 그는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한다. 나 역시 잊혀진 친구들이 있다”며 “그러나 그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