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낸 소금이 왔다. 서해안 갯벌에서 태양과 바람으로 자연 건조시켜 만든 천일염이다. 마그네슘과 미네랄이 다른 소금보다 많이 함유되어 있고 사람의 정성까지 들어가서 나름 귀하신 몸이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소금이 결정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는 문구였다.
소금이 되면서 타닥타닥 소리가 난다는 설명을 읽는 순간 가슴속에서 쨍한 시러움이 느껴졌다. 자기 몸을 뜨거운 태양아래 펼쳐내고 온 몸의 물이 메말라지는 그 극한의 경지에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소리,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몸부림 같은 소리가 바로 타닥타닥 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는 흔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한다. 견뎌내기 힘든 일을 당하면 하느님이 너무나 사랑하셔서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거라는 위로를 건넨다. 이렇게 버릇같이 하는 말들은 그저 말일뿐 나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주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소금이 내는 소리 타닥타닥 이라는 글귀를 읽었을때 지금껏 스쳐 지나갔던 모든 말들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왔다.
자신의 고유한 형질을 버리는 희생으로 바닷물에서 하얀 결정으로 변신한 소금은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모든 동물들은 나트륨이 생명에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땀이나 오줌으로 끊임없이 배출되는 나트륨의 보충을 위해 초식동물들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냥꾼들 역시 이를 알고 일부러 소금으로 이들을 유인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북부의 야생 염소들은 소금을 먹기위해 거의 90도 각도인 높은 댐위에 메달려 염분을 섭취하는 위험을 감수한다. 생존이 걸린 치열한 몸부림인 것이다.
인간 역시 소금이 필요하긴 매한가지이다. 헌데 모든 것이 풍부한 현대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소금이 아니었다. 우리 인간은 치열한 생존의 절박함을 화폐를 얻기 위한 경제적 행위에 쏟아붓고 있다. 소금을 얻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돈을 얻기 위해 모든 위험과 희생을 감수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남을 해치는 일도 불사하는 현실을 우리는 매일 저녁 뉴스로 확인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라는 것은 단지 명목일뿐 실은 자신의 목적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점점 더 거칠어지고 난폭해 지고 있다. 현대 사회는 돈이라는 환상을 쫓아 점멸하는 불나방들의 행렬로 화려한 불쑈를 벌이며 매일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
빛처럼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숭고함과 소금처럼 남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희생정신은 이제 유물이 되어 교과서 속 한 구절로 남아 버린듯 아득해졌다. 유럽에서는 가톨릭 교회가 신도들이 사라지면서 카페나 나이트 클럽으로 변경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웃 사랑의 가치를 강조하던 예수님이 생활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수선한 생활 안으로 갑자기 들어선 소금이 내는 소리는 나에게 잊고 있었던 희생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해주며 코끝을 시리게 했다.
물론 돈은 소금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존의 필수재가 맞다. 하지만 소금의 과다섭취가 심각한 질병을 가져 오듯이 돈에 대한 과도한 가치부여는 많은 불행을 초래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기도 전에 보여지고 알려진 것이 진실이라고 강요되는 현실에 살고 있다. 보여지는 것 외에 더 큰 가치가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이다. 많이 가지는 것에 대한 미학은 이제 우리 시대의 진리처럼 삶의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다, 하지만 과다한 섭취, 잘못된 생각으로 인한 부작용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습관처럼 하는 행위에 책임을 지라고 말이다. 우리 가슴 속에 묻혀 있는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타닥타닥 소리가 가슴속에서 울리고 있다. 생각없이 원하는 대로 만족을 추구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순간의 행동들에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칫 가장 귀한 것을 댓가로 지불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적어도 불나방처럼 살지는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