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여행지에서 우버를 탔을 적이다. 젊은 흑인 남자가 흥얼흥얼 쾌활한 노래를 부르며 차를 몰았다. 나도 덩달아 흥겨워서 편안하게 창밖의 도시 정경을 보는데 그가 스톱 사인에 차를 세운 후 창문을 열고 길 건너편에 서 있던 허름한 차림의 남자를 불렀다. 홈리스 남자가 다가오니 앞좌석에 있던 백팩에서 과일 샐러드 통을 꺼내서 줬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가방에 뭔가 음식을 넣어 다닌다는 그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 이라고 말하니 그는 “전 항상 저의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을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해요” 하며 씩 웃었다. 그의 따스한 인간애에 내 마음이 훈훈했다.
누군가에게 따스한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이 진실로 인간 답다고 믿는데 지난주에 유치원을 졸업한 손주의 예쁜 소식을 받고 내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유치원 생활을 가르치고 도움 준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직원들에게 “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또는 “저를 돌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 쓴 감사카드에 작은 초콜릿 패키지를 넣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물론 제 엄마가 지도했지만 잘 따라서 자신이 직접 글을 쓰고 학기가 끝난 마지막 날에 학교에 가지고 갔다.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본 12 사람에게 흐뭇한 순간을 선사한 손주가 자랑스러웠다.
예전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년이 끝나는 날, 일년동안 가르치고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도록 딸들을 교육시켰다. 애플은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제 내 아이들이 커서 그들의 아이들에게 똑 같은 버릇을 시작한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해마다 학년이 끝나는 날, 감사편지 쓰느라 일년 학교생활을 떠올리던 딸들이 생각난다. 제각기 다른 과목의 선생님들과 얽힌 아름다운 추억을 카드에 적던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행복한 엄마였다.
딸들은 해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궁리했고 취향이 다른 선생님들의 마음에 드는 선물을 만들었다. 그해의 인기품목을 고려하고 무엇인가 선생님의 책상에 올려 두고 싶은 작은 조각상, 그림이 그려진 타일, 수공예품까지 직접 만들거나 구입해서 포장을 했다. 어떤 해는 두 딸이 감사를 전하고 싶은 분의 숫자가 32명이어서 감사편지를 쓰는 딸들 옆에서 나는 밤늦도록 선물 바스켓을 만든 분명 극성스런 엄마였다.
학기 중에 미리 선물을 하지 왜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냐는 남편과 싱거운 의견충돌도 했었다. 학기 중에 선생님께 선물주면 뇌물이지 선물이 아니라고 고집 부리며 늘 성적이 모두 나오고 난 후인 학기 마지막 날에 딸들이 선물을 들고 학교에 가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받은 선생님들이 보낸 편지들을 박스에 잘 보관했다. 어떤 선생님은 잊지 않고 있다가 다음 학년에 올라간 딸에게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품을 주신 분도 있었다.
개인과 개인의 순수한 교제가 내 아이들과 몇 선생님들 사이에 이어졌다. 선생님들은 내 딸들의 마음에 미래를 심어줬고 사랑의 불꽃을 심어줬다. 7학년때의 선생님과 아직 교제하는 딸을 보면 스쳐 지나간 인연도 소중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부터 손주의 마음에도 사람을 사랑하는 작은 불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니 나의 삶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기분이 든다.
내 딸들은 성인이 되어 타지에서 자신들의 가정을 가졌고 그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은 많이 퇴직했다. 인연은 진실로 묘하다. 몇 년 전에 한 분을 식물원에서 만났다. 소일거리로 일한다며 나를 보고 반가워 하신 분과 나는 이제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라 식물들 이야기를 나누며 인연을 이어간다. 그리고 또 한 분은 나와 운동을 같이 한다. 연결고리인 딸들이 없어도 함께 늙어가는 좋은 친구가 되어서 운동하고 수다판을 벌린다. 나는 내 딸들을 사랑스럽게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행복하다.
주말에 손주가 여름방학을 보내려고 다시 앨라배마로 왔다. 작년 여름, 힘들었지만 내 생활에 활기를 준 아이와 만든 추억이 좋아서 올해도 용감하게 아이를 초대했다. 이곳에 마음 한 쪽을 두고 간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찾아왔다. 훗날 손주가 우버 운전자처럼 낯선 사람에게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올여름 나는 아이와 열심히 따스한 사람살이 연습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