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입국은 안 돼
1990년대 인기 가수 유승준(47·스티브 승준 유)씨가 재외동포 자격으로 국내 입국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고법 행정9-3부(부장 조찬영·김무신·김승주)는 13일 유씨가 주(駐)로스앤젤레스 한국 총영사를 상대로 “비자 발급 거부를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이 “병역의무를 면탈한 유씨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은 건 정당하다”고 본 1심 판결을 깬 것이다. 이날 선고에는 유씨의 팬클럽 회원 서너 명도 자리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선고 전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조찬영 부장판사는 “유씨의 병역기피 행위에 대해 2002년 당시 광범위하게 사회적 공분이 일어났으며, 20년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유씨에게 외국국적 동포에게 부여되는 포괄적 체류자격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다”고 전제했다.
다만 “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해야 하는데, 구 재외동포법상 병역을 기피한 외국국적 동포라 하더라도 일정 연령이 넘었다면 별도 잘못이 있지 않은 한 체류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 바뀌었지만 예전 법 적용…”병역기피 외 다른 잘못 없어”
유씨는 2002년 미국 국적 취득 후 한국에 들어오려다 입국 거부 당했다. 당시 26세였던 유씨의 모습. 중앙포토
재외동포법상 대한민국 국민이었지만 병역 기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얻어 외국인이 됐다면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38세가 되면 병역기피 외 또 다른 잘못이 있지 않은 한 체류자격을 주도록 한 게 2017년 이전의 규정이다.
2017년 개정을 통해 38세에서 41세로 자격 부여 가능 연령이 상향됐고, 2018년 개정을 통해 ‘법무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41세 이후에 부여할 수 있다’라는 조건이 추가됐다.
유씨는 이 사건 비자 신청 당시 39세였다. 재판부는 “유씨는 2015년 8월 비자 신청을 했기 때문에 유씨에게 2017년 개정 이후의 새 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재외동포법이 개정돼 병역기피 외국국적 동포가 41세를 넘겨도 법무부장관 재량에 따라 체류자격 부여를 거부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이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병역기피자들에게 점점 더 불리한 방식으로 재외동포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유씨에게 적용할 순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신청 당시 38세가 넘었던 유씨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하려면 별도의 행위나 상황이 있어야 한다”며 “이는 2019년 선고된 대법원 판결과 같은 취지”라고 설명했다. 유씨는 8년 전 비자를 발급해달라는 소송을 처음 냈는데, 1·2심에서 졌지만 대법원이 “38세가 된 때에는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외동포 체류자격의 부여를 제한할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을 깼다.
하지만 유씨의 승소가 확정된 뒤에도 LA 총영사는 비자 발급을 거부했고 결국 유씨가 이번 소송을 내게 된 것이다. LA 총영사 측은 유씨가 2002년 병역의무를 면탈한 것이 곧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비자 거부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병역기피 행위 외에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다른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LA 총영사의 처분서에는 2002년 면탈행위 외에 (비자 발급을 거부할 만한) 별도의 행위나 상황은 없다”며 “결국 유씨의 비자 신청을 거부한 처분은 적법하지 않다”고 했다.
유승준, 당장 입국은 안돼…판결 확정, 법무부 판단 남아
이날 선고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사진은 선고 직후 류정선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다만 이날 판결로 유씨가 곧바로 비자를 얻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번 판결은 고등법원 판결로, LA 총영사 측이 상고하면 대법원으로 올라간다.
외교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상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후 어떻게 해 나갈지에 대해선 절차를 유관기관과 협의해보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전 소송에서도 상고·재상고를 했던 만큼, 이날 선고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아보인다.
또 유씨에게 비자를 발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법무부가 입국금지를 고수한다면 유씨는 들어오지 못할 수 있다. 체류 자격과 입국 허가는 별개의 개념이다. 다만 법무부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확정판결이 나온다면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판결 취지를 존중하는 결론을 낼 것”이라며 “(판결이 확정될 경우) 외교부가 수용하는데 법무부가 수용을 거부하며 유씨를 못 들어오게 막는 일이 벌어지진 않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재외동포 비자를 내달라는 유씨의 소송은 올해로 9년째다. 유씨를 대리하는 류정선 변호사는 유씨가 이토록 비자를 받으려 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돼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본인이 한 행동에 비해 너무 가혹한 제재를 받았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명예회복적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현경.윤지원(moon.h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