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구하려면 12년 동안 돈을 모아야 한다. 숨쉬기 힘들면 차라리 병원 응급실에라도 가겠다.”
콜로라도주 덴버에 사는 전직 벽돌공 벤 갈레고스(68)는 40도 안팎의 땡볕 더위에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에어컨은 꿈도 꾸지 못한다.
월 1000달러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갈레고스가 할 수 있는 건 창문에 매트리스를 덧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잠을 청하는 정도다.
AP통신은 지난달 31일 미국 전역을 덮친 폭염으로 갈레고스와 같은 극빈층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내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무료 급식소에서 만난 멜로디 클라크(45)는 AP통신에 머리를 적신 채로 야외에서 요리하고, 실내에서는 불을 항상 꺼둔다고 말했다.
캔자스시티는 지난 28일 기온이 38도까지 치솟았지만, 임대주택의 중앙냉방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혹독한 환경 속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공장에서 일하는 캐트리스 설리번(37)은 에어컨이 있지만 냉방비를 아끼기 위해 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 대신 얼린 수건을 목에 두르거나 자동차에서 에어컨을 켜고 앉아있곤 한다는 설리번은 “이곳 주민들은 돈을 전부 먹는 데 쓴다”고 호소했다.
AP통신은 “미국 극빈층이 가장 더운 나날을 최소한의 사회 보호망 속에서 지내고 있다”며 “그들에게 한때 사치였던 에어컨이 이제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고 전했다.
덴버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60㎡ 주택에 냉방 시스템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2만~2만5000달러 수준이다.
연방 정부는 수십억달러를 들여 공과금 지급 및 냉방 시스템 설치를 지원하고 있지만, 수혜 대상은 극히 한정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클리블랜드 주립대에서 보조금을 연구하는 미셸 그래프는 미국의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이 적격 인구의 단 16%에게만 도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는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환경적 특성으로 인해 가난할수록 더욱 극심한 더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빈곤층은 주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도로 인근에 거주하는데, 환경단체 아메리칸 포레스트에 따르면 이런 지역은 지표면이 초목 지역 대비 8도(화씨) 이상 높다.
이러한 차이는 소득뿐 아니라 인종별로도 나타나고 있다. 샌디에이고대 연구팀은 1056개 카운티를 분석한 결과 70% 이상 지역에서 빈곤층 또는 흑인·히스패닉계·아시아계 인구가 많은 구역의 기온이 더 높았다고 밝혔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0가구 중 1가구가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데, 디트로이트의 백인 가구에서는 그 비율이 4%에 불과한 반면 흑인인 가구에서는 15%에 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