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바람에 무조건 대피
큰 나무도 뒤흔들리는 강풍
연기·냄새로도 정신 못차려
‘공항 가야 산다’ 뒷길로 차몰아
한국서 온 관광객 안병윤씨는 마우이 섬 산불 발생 당시 대피 상황을 “재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고 말했다. 본지는 마우이 민박·택시투어 최영화 사장의 도움으로 마우이 카훌루이 공항으로 긴급 대피한 안씨와 지난 9일 오후 7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안씨 가족은 여권조차 챙길 겨를 없이 모든 짐을 호텔에 두고 빠져나온 상태였다.
-산불 발생 소식을 어떻게 접했나.
“8일 오전에 리조트가 정전됐다. 호텔 측에서 오후 늦게 복구될 거라고 했다. 오후 2시 정도였다. 식당 운영을 안 하니까 배가 고파서 인근 상점에 먹을 것을 사러 나갔는데…그 이후 돌아가지 못했다.”
-어떤 상황이었나.
“차를 몰고 나가는데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라하이나 지역 한 마트에 가니까 사람들이 몰려 다급하게 식료품을 쓸어 담고 있었다. 맞은편 산을 보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더라. 오후 3시가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어떻게 대처했나.
“점점 연기가 라하이나를 뒤덮고 있는 게 보였다. 연기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산 쪽에서 불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몰고 나가려고 했지만, 차량이 너무 많아 움직일 수 없었다. 순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놀룰루 총영사관에 전화했다. 가능한 공항 쪽으로 가라고 하더라.”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재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아비규환이었다. 알고 보니 이미 앞길은 도로가 차단된 상황이었다. 즉시 차를 돌려 해변이 있는 뒷길로 향했다. 그렇게 무조건 공항 쪽으로 차를 몰았다. 공항까지 무려 4시간이 걸렸다. 여권도, 짐도 다 두고 슬리퍼만 신고 나온 거다. 신분증이 없으니 영사관에서 긴급 여권을 받았다. 이제 호놀룰루로 나가기 전이다.”
☞마우이 섬 현지 상황은
마우이 민박·택시투어 최영화 사장은 산불 발생 이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대피소, 공항 등을 오가며 한인들을 돕고 있다.
최 사장은 “지금 마우이 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대피소 등에 음식, 물, 이불 등을 전달하고 있다”며 “공항에는 약 2000명이 대기 중인데 바닥 곳곳에 사람들이 누워 밤을 새우고 있지만, 어느 정도 질서정연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호놀룰루총영사관은 10일 이동규 영사(동포 담당)를 피해 지역인 마우이 섬에 급파했다.
호놀룰루총영사관 양수선 실무관은 “아직 한인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여권 등 짐을 숙소에 두고 나와 신분증명서 등을 요청하는 문의 전화가 많다”고 말했다.
총영사관에 따르면 마우이 산불 피해로 인한 긴급 단수 여권 발급은 10일 현재 총 12건이다.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유효기간이 만료된 경우 인도적 사유로 긴급 출국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사진 부착식으로 발급되는 임시 여권이다.
이 밖에도 미국적십자사는 전화(1-800-733-2767)로 실종자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종자 명단 등을 확인하려면 ‘옵션 4’를 누르면 된다. 산불 피해자들도 도울 수 있다. 적십자가 웹사이트(REDCROSS.org) 또는 ‘90999’ 번호를 눌러 ‘REDCROSS’를 입력하면 10달러를 기부할 수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