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의 동화보다 성인 문화에 더 노출된 6살 손주의 시선을 잡는 일은 나에게 도전이었다. 작년 여름처럼 ‘옛날 옛적에’ 로 시작하는 스토리에 몰두하지 못하고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GI 조의 과격한 액션물 스토리를 즐기는 아이를 위해 올 여름에는 나도 새로운 방안으로 대응했다.
청소년 용으로 편집된 영국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책은 그림책이 아니고 간혹 흑백의 삽화가 끼여있다. 명탐정 셜록 홈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 시리즈 10권을 봄에 구해두고 여름을 기다렸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주니 그림이 없어 재미없다고 해서 머리로 상상하며 사건의 해결을 추측해보라고 권했다. 즉각적인 비주얼에 익숙한 아이여서 내가 읽어주는 스토리를 따르기가 지루하니 바로 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탐정소설을 수면제라 불렀다. 아이를 쉽게 잠재우려고 매일 저녁마다 셜록 홈스가 의뢰 받은 다양한 미스터리 사건을 어떻게 치밀하게 조사해서 진실을 밝히는지 읽어줬다.
몇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잠이 들던 아이가 슬그머니 스토리에 몰두했다. 그러니 나도 아이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계속 책을 읽어줬다. 언제부터 인가 읽고 읽어도 아이는 잠이 들지 않고 오히려 피곤한 내가 졸면서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띄엄띄엄 스토리가 끊어지니 아이는 내 잠을 깨우려고 애를 썼다. 꼭 자기 엄마를 닮은 아이다. 예전에 아이의 엄마가 그랬다. 책을 읽어주다 내가 잠이 들면 나를 흔들어 깨워서 어디서 스토리가 중단되었는지 지적하며 계속 읽으라고 나를 줄기차게 괴롭혔다. 딸이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나는 해방되었다. 이제 손주도 더듬더듬 혼자서 책을 읽기 시작하니 내년 여름에는 무엇으로 아이를 매료시킬지 걱정이다.
저녁을 먹기가 무섭게 양치를 치고 침대에서 셜록 홈스를 기다리는 아이 덕분에 올 여름방학의 저녁은 빠르게 지나갔다. 7권째의 책을 읽으니 아이는 추측하기 시작했다. 9권째의 책 전반부를 읽을 적에는 범죄자가 누구인지 알겠다며 스토리에 자신의 의견을 삽입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탐정소설이 아이를 사로잡았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10권을 모두 읽고 비주얼보다 상상력이 얼마나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는지 우리는 이야기했다.
예전에 나도 탐정소설이나 추리소설에 몰두했었다. 1980년대초 군에 복무하던 시절, 톰 클랜시의 ‘붉은 10월’을 읽고 완전히 그의 팬이 됐다. 많은 페이지로 두터운 그의 책들은 현실적인 국제정세와 맞물려 있고 명철한 주인공 잭 라이언이 종횡무진 활약한다. 시대를 앞선 군사분야의 전문성과 스파이 정보망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고 국제적인 테러단체들의 거미줄 같은 네트웍과 활동도 내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했다. 그래서 사건의 전개와 발전이 오묘하게 엮어지던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발간된 그의 책을 읽었다. 어떤 세미나에서 내 무릎위에 그의 책을 펼쳐 놓고 읽다가 상사로부터 훈계를 받은 적도 있었다. 톰 클랜시가 어떻게 다양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나 궁금했다가 40명이 넘는 조사원들이 그에게 모든 정보를 모아준다는 사실을 알고 쉽게 이해했다. 그가 공동집필을 한 후부터 나는 그의 책에서 묘미를 잃었다.
그후 미시시피 작가 존 그리샴의 법적 스릴러에 푹 빠졌었다. 변호사 출신인 작가는 법과 범죄에 명석한 변호사를 잘 버물려서 사건을 전개하고 다시 탁월한 해결로 명쾌하게 스토리를 푸는 바람에 잠을 설치며 읽었다. 그의 소설에는 세상사 험악해도 인간미가 물씬해서 좋았다. 나중에는 장거리 여행하며 그의 오디오 북을 들어서 남편도 존 그리샴의 스토리에 흥미를 가졌다.
스릴러나 탐정소설에는 일상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재미와 오감을 톡 쏘는 감칠맛이 있다. 무대가 크고 작거나 상관없이 다양한 문화와 관점이 섞인 많은 변수들이 상호 얽히고설켜 흥미롭다. 더구나 민감한 국제정세와 인간관계에 컬러풀한 캐릭터들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일으키는 상황들은 보통사람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서 나는 오랫동안 그런 스토리들에 잡혀 있었다.
이제 내 손주는 새로운 분야에 눈을 떴다. 여름방학의 밤을 잘 보내게 해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명탐정 셜록 홈스처럼 이 아이도 음악을 좋아하고 소소한 일에 세밀한 주의를 가지고 원인과 결과를 냉철하게 밝히며 성장하길 바래 본다. 이번주 제 집으로 떠난 아이가 비운 자리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