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쏠베이지의 노래가 내 방에까지 들린다. 아내가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들리는 귀에 익은 노래, 하던 일을 멈추고 노래를 듣는다. 옛날 즐겨 듣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영화도 본 그 쏠베이지의 노래다. 고향 떠나 외지를 방황하는 한 남자를 늙을 때까지 기다리는 노르웨이의 여인 쏠베이지의 노래.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또 겨울이 가면 봄이 오겠죠/그리고 여름이 오고 한 해가 가고/또 한 해가 가겠죠/그러나 언젠가 그대가 돌아오실 거라 굳게 믿고 있어요/확실히 알아요 /그래서 난 약속대로 그대를 기다릴 겁니다/난 기다릴 거라 약속했어요/아 아 아아아 아아아…
외지를 방황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동안 젊음도 세월 따라 가버렸지만, 아직도 기다리는 애절한 멜로디, 드디어 늙고 병든 남자가 고향 집을 찾아오고, 기다리던 늙은 여인을 만나, 그녀의 팔에 안겨서 그녀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눈을 감는 이야기. 결혼 전 젊어서 한 때 나도 그런 여인이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다.
닥터 Y에게 모처럼 전화를 했다. 골프도 자주 치고, 시간 맞추어 집에 와서 간병인도 챙기고, 아내 식사는 자신이 준비한다고 했다. 부인은 좀 어떠냐 고 물었다. 아주 조금씩 나빠진다고 했다. 파킨슨 병과 치매 환자인 부인, 예정된 과정을 거친다는 말로 들렸다.
부인의 병이 악화되어 에모리 노스사이드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일 년 전이다. 병원에서 몇 주 있다가 퇴원할 때, 두가지 선택이 있다고 했다. 하나의 선택은 요양원으로 보내는 것이고, 다른 한 방법은 집으로 데려오는 길이라고.
“아내를 요양원에 보낼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지. 풀타임 간병인을 고용하고, 내가 돌보기로 했어요.” 그는 의사로서 은퇴하기전 세개의 요양원을 돌본 때가 있었다고 했다.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외로운 노인들을 많이 봤다고 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부인을 아직은 요양원에 보낼 수 없어서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은퇴하고 이곳에 와서 골프장에서 처음으로 닥터 Y를 만난 후, 우린 골프파트너가 되었다. 그와 나는 80대중반, 우리가 살아온 세월과 배경이 같고, 미국 와서 전문인으로서 은퇴하고 어울려 살며 서로 기질이 맞는 편이었기에 잘 어울렸다.
그는 골프를 치면서도 간간히 핸드폰을 켜고 자기 집안에 설치된 감시경을 통해, 아내와 이야기를 하고, 간병인과도 통화를 했다. 그의 통화를 옆에서 들으며 부인의 상태를 알았고, 그의 집에 몇 번 가서 부인도 만났다. 휠체어를 타신 부인, 병이 들었어도 젊어서 고왔던 얼굴은 아직도 고왔다.
치매환자를 가족으로서 도울 때 가장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는 환자의 망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환자는 의심을 하고 상상을 통한 망상을 하고 망상이 망령으로 된다는 소리. 돈 다발, 보석반지를 옆사람이 훔쳤다고, 다른 여자 주려고 훔쳤다는 등의 망상 때문에 환자를 다루기가 어렵다는 수기도 많이 읽었다.
부인과 몇 번 만나 내가 나눈 대화를 돌아보면 변화가 느껴진다. 병을 처음 앓을 때는 남편에 대한 부인의 말이 쓰고 불평이 많은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부인은 온순해지는 것 같았다. 치매환자는 착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가 있다고 하는데, 혹시, 닥터 Y의 헌신적인 돌봄이 부인을 착한 치매환자로 만들지 않았을까?
“김 교수, 내가 다음주에 날짜를 잡을 터이니, 와서 한잔 합시다!” 내가 전화했을 때 닥터 Y가 말했다. 몇 번 그의 집에 가서, 뒷마당 피워 놓은 모닥불 불꽃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고 묵은 문서와 책들을 태운적도 있다. “좋지요. 부인의 병세는 요즘 어때요?” “조금씩 나빠지고 있어요. 그래도 아내가 성녀, 그 인도의 누구 더라 성녀 있잖아요?” “마더 테레사?” “맞아, 마누라가 성녀 테레사처럼 되고 있어요.” “그래요?” 어떻게 병든 부인이 성녀 테레사처럼 되어가고 있을까, 나는 이해할 수 없어 혼자 고개만 갸우뚱한다.
“마누라는 내가 준비한 음식만 좋아하고, 나는 마누라 삼시 세끼 준비해요. 그러고 무엇보다, 내가 있어야 간병인들이 마누라에게 더 잘 해요. 그러니, 남편이 아내보다 몇 년 더 살다 죽어야, 아내가 고생 덜하다 죽어요.” 그의 병든 아내 챙기는 말을 들으니, 쏠베이지 노래가, 테레사가 되어 간다는 친구 부인의 노래로 바뀐다.
당신 하나 바라보며 살았어요. 청춘의 꽃밭에서 자란 자식들은, 이제 저들의 꽃밭을 이루고, 세월 따라 가버린 수많은 일들과 청춘 이젠 더 이상 미련 없어요. 흰머리 검버섯 늙고 병든 이 몸, 당신의 품에 안겨 나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어요.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한다던 결혼 약속을 지키는 당신, 고마워요. 사랑해요 멋진 당신. 아 아 아, 아아아 아아아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