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영상을 보다가 ‘개딸’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프린트된 사자성어 아이디에 시선이 꽂혔다.‘홍로점설 (紅爐點雪)’. 한 점의 눈이 뜨거운 화로에 떨어져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모습을 빗댄 말이다. 이는 사람의 작은 힘이 큰 일을 이루기에는 보람이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사람의 사욕이나 의혹이 순간적으로 사라져 마음이 맑아지는 모습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말에 두 가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어, 그 복잡성과 깊이가 독특하게 느껴진다.
이런 사자성어 티셔츠를 입고 설치는 저들은 과연 누구일까. 궁금하다. 사실 온라인에 올라온 개딸들의 영상을 보면 전혀 젊지 않고 오히려 40~50가 다수인 점을 들어 이들의 국적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래저래 한국에서 열성 당원들이 주도하는 팬덤 정치는 양념이 아닌 정치권의 주류가 됐다. 추종자들은 SNS를 통해 추종 대상자의 정보를 확인하고 나눈다. 또 자신들의 결속력을 확인하고 행동 방침을 공지하기도 한다. 심지어 추종 대상자를 해한다고 믿어지는 집단이나 개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급기야 팬덤 정치는 한국 정치의 부정적 병폐의 하나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들이 투표로 심판할 수도, 견제할 수도 없어서 정치적 책임을 전혀 지울 수 없는 익명의 집단이라는 점이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더 좋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모였을 강성 지지자들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과격한 팬덤은 파멸의 씨앗이 된다. 방탄소년단 아미(ARMY) 같은 연예인 팬덤이 무해한 데 비해 현실 정치인을 선과 정의의 화신으로 추앙하는 정치 팬덤은 광신과 직결된다. 선악 이분법의 진영 논리로 무장해 정치를 정의와 불의가 대결하는 전쟁 정치로 몰아가 공동체를 황폐화하기 때문이다. 폭력적 반지성주의를 부추기는 팬덤 정치는 파시즘으로 가는 초대장이다.
팬덤 정치는 롤러코스터 정치다. 절차적 합리성에 따른 안정된 변화가 아닌, 파격과 의외가 반복되는 불안정한 정치다. 팬덤 정치는 단순한 지지 행동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집단들 사이의 혐오와 적대의 교환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마음 상태를 분열과 증오의 상태로 이끈다는 데 있다. 정보나 지식, 판단은 음모론과 기획론에 쉽게 휘둘리며, 그로 인해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신뢰와 협동의 시민 문화가 자라날 기반을 파괴한다. 팬덤 정치는 내용 없는 ‘정서적 급진주의’를 가져온다. 팬덤 정치는 당내 다원주의를 위협한다. 팬덤 정치가 낳는 언어의 저질화도 큰 문제다. 개혁을 포함해 많은 정치 언어들이 저급하게 희화화하는데도 그 틀 안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이 인식되지 않는다. 말은 흉기가 되고, 서로 침 뱉고 모욕하는 것이 정치의 일상이 된다. 거부감을 갖게 하는 시위 형태가 양산되고 이들과 더불어 유튜브 정치꾼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은 팬덤의 유불리를 기준으로 자신들에게는 과도하게 관용적이고, 상대에게는 과도하게 적대적일 뿐, 공정한 대응은 없다. 다른 사람을 자극해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에 더 많은 공격이 가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치를 내전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언제든 오류나 실수의 가능성을 안고 사는 존재다. 그런 자각 위에서 이견으로부터 배우고 이견과 협력할 수 있는 시민성이 커져야 민주주의가 산다. 이견을 가진 시민은 배제해야 할 악이나 적이 아니다. 생각이 다를 뿐인 동료 시민이다. 말이 저급한 자들을 승자로 만드는 팬덤 정치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무례한 정치 언어 사용자들이 위세를 떨치면 민주주의도 정치도 품격을 잃고 만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면 정치만이 아니라 세상을 온통 어둡고 우울한 곳으로 만든다.
정치 팬덤에 업힌 선동가의 음모론이 득세하면 민주주의는 고사한다.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으로 번영하던 아테네 민주정은 순식간에 참주들이 활개 치는 폭민정으로 전락했다. 군중을 선동해 민회를 장악한 포퓰리스트들은 법과 정의를 파괴한 폭민 통치로 고대 아테네를 망가뜨렸다. 일상과 정치의 건강한 분리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적 린치가 가능하다면 민주주의 이전에 인간 삶부터 견딜 수가 없게 된다. 우리에게 정치가 필요한 것은 보통 시민의 삶의 조건을 살피고 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생산과 돌봄,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
팬덤정치는 불합리한 정치다. 시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켜놓고 인간관계를 증오와 혐오로 갈라놓은 뒤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어두운 정치다. 서로가 다르게 ‘옳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들만 ‘옳기’ 위한 정치다. 이런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독단이며, 독단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정치는 권력자를 위한 것도 국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시민을 웃게 할 수 없는 정치, 사회를 밝게 만들 수 없는 정치는 더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 이 세상을 밝고 다정한 곳으로 만들어야 할 소명을 버리면 우리 삶이 위험해진다. 우리에게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