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감자튀김 한 개가 이스라엘에게 주는 총알 한 발”
요즘 아랍·이슬람권에서 번지고 있는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 불매운동에 동참한 어느 말레이시아인이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집트의 유명 인플루언서 아마드 나기도 “이 음식점(맥도날드)은 없어져야 하며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고 했다.
이스라엘군 지원에 화난 아랍·이슬람권
불매운동은 이스라엘의 맥도날드가 이달 초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싸우는 이스라엘군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뒤 시작됐다. 특히 지난 17일 가자지구 내 병원 폭발로 팔레스타인 수백명이 사망한 후, 이스라엘군에 대한 아랍·이슬람권의 분노가 증폭됐다.
이후 SNS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맥도날드 불매운동은 폭력 사태로 번졌다. 튀르키예·레바논·이집트 등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에는 현지인들이 한밤중에 찾아와 유리창을 부쉈고, 인도에선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이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짓밟아 경찰에 체포됐다.
맥도날드의 이스라엘 지부가 최근 자국군에 무료 음식을 제공한다고 발표하면서 아랍·이슬람권 곳곳에서 불매 운동이 번지고 있다. 튀르키예인들(왼쪽)이 지난 23일 이스탄불 맥도날드 지점 유리창을 부수고,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오른쪽)이 지난 19일 인도 뭄바이 맥도날드 앞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짓밟고 있다. 사진 X(엑스) 캡처
이에 쿠웨이트·이집트·요르단 등의 맥도날드는 “이스라엘 맥도날드가 한 일은 우리와 별개”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카타르·튀르키예·바레인·오만·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맥도날드는 가자지구에 기부금을 전달하며 ‘선 긋기’에 나섰다.
전 세계 120개국에 4만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맥도날드는 나라별로 운영자가 다른 독립적인 사업장이다. 현지인을 고용하고 임금과 가격 등을 재량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아랍·이슬람권에서 사 먹는 감자튀김이 이스라엘군의 총알로 지원된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무기를 보내며 적극 지지하는 미국에 화가 난 아랍·이슬람권은 맥도날드를 ‘미국의 상징’으로 여기고 화풀이하고 있다.
과거에도 맥도날드는 아랍·이슬람권이 미국 등 서방과 대척하거나 사회 갈등이 심해지면 종종 분풀이 대상이 됐다. 지난 2003년 미국 주도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레바논 베이루트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폭탄이 터져 5명이 다쳤다. 지난 2011년 이집트 등에서 ‘아랍의 봄’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몇몇 현지 매장이 공격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대사관이 경찰의 보호를 받는 것과 달리 맥도날드는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기물 파손 행위가 되기 쉬운 표적”이라고 지적했다.
‘평화 상징’ 맥도날드, 전쟁 종식 이끌어
세계 각국에 진출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맥도날드는 세계화, 서구식 근대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나아가 경제적 풍요와 이로 인한 안정·평화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1996년 칼럼에 주장한 ‘황금아치 이론’이 대표적이다.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노란색의 거대한 ‘M’자 조형물에서 이름을 딴 그의 주장은 맥도날드가 입점한 국가 사이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세계화와 각국 경제가 얽히면서 전쟁으로 서로가 입을 손해가 크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맥도날드가 있다는 건 그 나라가 개방됐고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고, 그래서 전쟁 대신 평화와 경제발전을 추구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근거로 제시된 게 미국의 천적인 이란·소련 등과의 관계 개선이다. 미국은 지난 1950년대 이란 석유를 놓고 긴장 관계였다. 그런데 1970년대 친미 정권인 팔레비 왕조가 복원되고 1971년에 맥도날드가 이란에 들어서면서 관계가 좋아졌다. 이어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반미 정권이 들어서고 맥도날드가 철수했다. 1990년 소련 모스크바에 맥도날드가 개장했고, 이듬해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 시대가 끝났다.
실제로 1990년대 중동에 맥도날드가 속속 진출하면서 프리드먼의 주장은 맞는 듯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이집트·요르단·레바논 등과 30년 가까이 전쟁을 벌이면서 중동은 ‘화약고’로 불렸다. 그런데 이스라엘(1994년)·이집트(1994년)·요르단(1996년)·레바논(1998년) 등에 맥도날드가 차례로 개장하는 시기 한동안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018년 북미 정상회담 때,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자 맥도날드 평양점이 생길지 모른다는 외신 보도도 나온 적 있다.
21세기에 무너지는 황금 아치 이론
그러나 황금아치 이론이 맞지 않은 사례도 많다. 지난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 2006년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전쟁,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다. 전쟁 당사국 양측에 맥도날드가 진출해있던 나라다.
러시아처럼 전쟁을 계기로 맥도날드가 철수하는 나라도 있다. 러시아 맥도날드는 현지 업체가 인수해 지난해 6월 재개장했다. 간판 메뉴 ‘빅맥’은 ‘빅히트’가 되고, 해피밀과 유사한 어린이 세트도 출시하는 등 사실상 ‘짝퉁 맥도날드’다. 러시아 정부가 모조 브랜드를 허용하고 있어 맥도날드는 손해배상 소송도 하지 못한 채 속앓이 중이다.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도 이스라엘군과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교전이 확대되는 등 황금아치 이론을 반박하는 사례가 될 것이란 예상이 커지고 있다. 황금아치 이론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회에 중산층이 늘어도 갈등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면서 “21세기에 강대국 경쟁이 다시 시작된 것은 인간이 순전히 경제적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고 짚었다.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엔 맥도날드 매장이 없다.
박소영(park.soyoung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