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남부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길은 단풍들의 찬란한 향연이었다. 가까이 멀리 산등성이들이 울긋불긋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러다가 어떤 지역에서는 완전히 벌거벗은 나무들이 나를 움칫하게 했지만 버지니아 북부로 들어서며 다시 만난 가을의 절정에 운전하던 내 시선이 흩어져 탄성을 질렀다. 옆에 앉은 남편이 불안하다고 툴툴대도 ‘드라이빙 미스터 데이지’ 에 익숙한 나였다.
오랫동안 살았던 워싱턴DC 다운타운 콘도를 떠나 버지니아 북부 페어팩스로 여름에 이사한 큰딸네 집은 사진으로 만났다가 막상 찾아오니 한 폭의 그림이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집 주위는 붉고 노란 단풍으로 눈이 부셨고 흩어져 뒹구는 무수한 낙엽이 키 큰 정원수들과 뜰을 덮어서 마치 숲의 요정이 사는 집 같았다. 딸네 가족과 함께 앞뜰에 찾아온 사슴 세 마리도 우리를 반겨줬고 아래 위 동서남북으로 난 커다란 창으로 밖의 가을이 집안에도 들어서 있었다. 자연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던 큰딸이 처음 보고 반해서 샀다는 이 집은 세상과 떨어진 착각을 줬다.
집안에는 아직 이삿짐이 흩어져 어수선해도 발에 걸리지 않도록 공간이 넓어서 좋았다. 딸은 주중에는 직장일로 바쁘고 주말에는 아이와 온갖 문화행사 찾아다니는데 우선하니 집안 정리는 뒷켠에 밀린다. 도시의 소음이 전혀 닿지 않은 이곳에서 야생동물들과 어울리니 나의 시간관념이 없어진다. 주말에 아침을 먹은 후 딸과 사위가 집 주변에 여러 손 봐야하는 일에 몰두하자 남편과 나는 의기투합해서 뜰로 나섰다. 잎 송풍기로 낙엽을 날려서 모으면 된다고 사위가 말려도 우리는 갈퀴로 열심히 긁어 모았다.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낙엽을 모으는 재미가 대단했다. 함께 낙엽을 긁어 모으던 손주는 가끔 갈퀴를 기타인양 튕기며 노래 불렀다.
그러다 지붕위에 오른 사위가 날려보낸 낙엽이 정원수 위에 소복하게 쌓여 겨울의 눈꽃을 상상하게 했다. 평안과 여유가 가득함을 느끼니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 시에 표현된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고요와 평화속에 내가 있었다. 재미난 형태를 가진 나뭇가지나 조금 독특한 빛을 품은 돌 조각에 애착하는 딸과 손주의 수집품을 보는데 이웃 아이가 멀리서 손주를 불렀다. 그러자 나가서 실컷 놀라고 아이를 내보낸 딸을 보며 나는 내 손주와 같은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 공부에 소홀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한인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와 내 딸의 아이 키우는 방법이 참으로 다르다.
커피잔을 들고 아침 햇살에 훨훨 타오르는 낙엽이 아름다운 뒤뜰의 한 정경에 취하니 출근하러 나서던 사위가 내가 반한 정경을 늘 보도록 그 방향을 유리로 해서 산뜻한 방을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음에 마음이 아팠다. 꼭 15년 전이다. 딸과 사위가 결혼하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안사돈과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됐다. 그녀와 캐나다 국경 근처의 미네소타 호숫가의 통나무 별장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함께 보낼 적이다. 그때 그녀는 나에게 “훗날 아이들이 집을 사면 그들의 뒤뜰에 트리하우스 같은 예쁜 방을 마련해서 가까이서 아이들 사는 것을 보자” 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돈을 잘 벌면, 우리 여행비를 대라하고 우리는 세상구경 다니자” 했었다. 우리의 야무진 꿈은 온가족을 웃겼다.
간호사였던 안사돈은 퇴직하고 노후를 즐기려던 때 암진단을 받았다. 몇 년 치료를 받으면서 두 딸의 결혼식을 치루었고 무척 할머니가 되고 싶어했었다. 손주를 원하던 그녀는 갓난 외손녀를 보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 각별한 사이였던 장남인 사위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혼자 삭였다. 그후 내가 사위의 사랑을 받을 적마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했고 우리의 손주가 씩씩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어디선가에서 지켜 보길 바랬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숲이 우거진 정원을 가진 집을 마련하고 뒤뜰에 내가 신선놀이 하도록 정자를 지어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세상 구경하겠다면 그 비용도 대어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우리가 함께 꾸었던 꿈이 실현되는데 그녀는 이 세상에 없다.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나는 그녀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