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용접공·배관공 등을 훈련하는 재단을 운영하는 마이크 로우는 지난 5월 폭스뉴스에 “우리 재단에서 배출한 숙련공 1700명 상당수가 역대 연봉자”라고 소개했다. ‘3D 일자리’ 직업군을 알리는 TV 시리즈 ‘더티잡스’ 진행자로 유명한 그는 “로봇·AI(인공지능)가 대체 불가한 기술을 익히면 살아남을 수 있다”며 블루칼라 직종을 권했다.
#싱가포르에서 자격증을 갖춘 배관공은 월평균 6000 싱가포르달러(약 587만원)~8000싱가포르달러(약 783만원)를 번다고 신민 데일리뉴스는 전했다. 이 중엔 한 달 수입이 1만2000 싱가포르달러(약 1174만원)에 이르는 배관공도 있었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처럼 미국·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블루칼라(제조·건설 등 육체노동 종사자)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란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고도화하더라도, 블루칼라가 수행하는 육체노동·돌봄 등은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달초 “블루칼라 직종이 노다지가 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블루칼라에 대한 재평가 논의를 조명했다.
매체에 따르면 사무직 등 화이트칼라 직종과 달리 블루칼라 직종 상당수는 AI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달 말 피어슨그룹은 5개국(호주·브라질·인도·미국·영국)에서 5000개 이상 일자리에 AI가 미칠 영향을 조사한 ‘스킬스 아웃룩’ 보고서를 공개했다.
사진 / 로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회계사·행정비서 등 특정 화이트칼라(사무직) 업무의 30%는 AI가 처리 가능했다. 반면, 배관공 등은 작업량의 1%만 AI가 대체 가능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중간 성격인 ‘그레이 칼라’인 요리사·소방관도 AI에 대체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를 두고 AI시대 교육을 연구해온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에 “배관 생산은 AI·로봇이 해도, 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는 건 인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미국 조사전문기관 퓨리서치 센터는 인간의 손길이 필요해 AI로 대체되기 어려운 분야로 고장·수리 서비스(엘리베이터 수리공), 접객 및 요리, 농업, 헬스케어(보모·간호사)를 꼽았다.
반면 회계사·비서·사서 등은 AI에 의한 영향이 큰 직종으로 지목됐다. 매체는 “생성형 AI인 챗 GPT가 주방 리모델링하는 건설 노동자를 대신할 순 없는 노릇이다”고 전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도 “에어컨 설치기사·목수·지붕수리공 등은 AI 영향이 미미하다”고 짚었다.
숙련배관공 연 9만불, 초짜도 5만불
때문에 미국에선 잘만 하면 억대 연봉을 벌 수 있는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직장 평가사이트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문(마스터급) 배관공은 연 9만348달러를 번다. 이는 지난해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석사학위 소지자 평균 연봉(8만6372달러)을 웃돈다.
배관공의 평균 연봉은 6만130달러로 지난해 미 대졸 초임 평균 연봉(5만8862달러)보다 높다. 도제 훈련을 받는 ‘초짜’ 배관공도 연 5만785달러를 받는다. 억만장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하버드 진학보다 배관공을 하는 게 낫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블루칼라 직종이 노다지가 된다”는 이코노미스트 커버 기사. 사진 X(옛 트위터)캡처
고령화로 인해 젊은 노동력이 부족해진 점도 블루칼라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미 전국 제조업 협회(NAM)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제조업 분야에서 210만명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
정제영 교수는 “특히 인건비가 비싼 미국 등 선진국은 식당 서빙 등 단순반복 노동에 AI를 도입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10명이 일하던 것을 2~3명이 AI를 활용해 일하는 시대가 온다”면서 “AI가 실수할 때 민첩하게 대응하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만 살아남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덧붙였다.
대졸자 메리트 “글쎄”…대학, 필요인재 배출 못 해
미국 등 선진국에선 경쟁력을 갖춘 블루칼라의 임금 수준이 개선되면서 화이트칼라와의 임금 격차도 줄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영국 고용시장 최하위층에서 임금 상승률이 최상층보다 더 가팔랐다. 2016년 이후 미국에서 급여 하위 10%의 실제 주당 소득은 상위 10%에 비해 빠르게 증가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경우 대졸자의 ‘메리트’가 전만 못하다는 분위기다. 매체에 따르면 2010년대 중반부터 미국 내에서 대졸자 임금 프리미엄은 감소했다.
2015년 미국 학사 학위 이상 근로자는 고졸자보다 평균 3분의 2만큼 더 많이 급여를 받았다. 4년 뒤 격차는 절반으로 줄었다. 건설현장 근로자 출신으로『블루칼라 캐시』라는 책을 쓴 켄 러스크는 폭스뉴스에 “요즘 대학들은 졸업장만 줄 뿐, 산업현장에 필요한 인력은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AI 기술이 발달하면 블루칼라 직종의 업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매년 미국에서 작업 중에 부상 사고가 270만건 일어나며 이 과정에서 약 5000명이 사망한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는 모니터링 강화에 AI가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것이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