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이민 120년을 맞은 올해, 애틀랜타 한인사회도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오랜 시간 공들인 정치력 신장 노력과 기업 진출 및 투자의 결실이었으며, 동시에 이민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의 표출이기도 했다.
본지 선정 2023년 10대 뉴스(12월 22일자 A-1,2면)에 드러난 사건 사고 및 여러 현상들을 바탕으로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빛과 그림자, 새해 과제 등을 분야별로 심층 분석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정치력 신장과 ‘새 정치'(상, 하)
② ‘그리스도의 군사들’ 사건과 이민사회 (상, 하)
사이비 극단주의에 30대 여성 희생 ‘충격’
9월 시신 발견…검찰, 11월 용의자 7명 기소
한인사회 파고든 종교적 광신 행태에 경악
“인내보단 지름길 추구하는 이단 경계해야”
올해 애틀랜타 한인사회에 충격파를 던진 사건이 있었다. 자칭 ‘그리스도의 군사들(Soldiers of Christ)’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9월 12일 밤 둘루스의 제주사우나 앞 주차장에 세워 둔 차량의 트렁크에서 30대 한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때 살인사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한 가족의 종교적 극단주의로 인해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군사들(Soldiers of Christ)’로 칭한 용의자들은 한국에서 방문한 피해 여성을 지하실에 감금하고 종교적인 ‘입단 과정’을 강요하며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귀넷 검찰은 11월 29일 중범죄 살인, 불법 감금, 시신 은닉, 증거변조, ‘리코(RICO) 법’ 위반 혐의로 모친과 자녀 등 용의자 7인을 전원 기소했다.
▶풀리지 않은 ‘5번’ 의혹= 귀넷 검찰은 이들 용의자들이 집단적으로 한국에서 온 피해자 조세희(33) 씨의 죽음에 개입한 것으로 해석했다. 용의자들은 유니폼까지 준비하는 조직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소장에 의하면 지난해 11월초 이준호는 어머니 이미희에게 그가 12명의 제자(disciple)를 구할 계획이며, 그들이 누가 될지는 모르나, 조세희는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씨에게 훗날 제자들이 구해지면 유니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의 극단주의적 행태는 조씨에 대한 ‘입단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기소장에 따르면 이때 용의자들은 조씨의 휴대폰, 지갑, 옷 등의 소지품을 강제로 빼앗았다. 검찰은 용의자 이준현, 이가원, 이준영 등이 조씨를 ‘체력 단련(physical training)’ 시키는 과정에서 그를 감금, 폭행을 가하고 굶겼다고 파악했다. 이외에도 조씨를 얼음물에 들어가게 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피해자의 건강은 악화됐다. 이미희가 에릭 현에게 문자로 조씨가 “외부인과 소통하지 못하게 하라” 등의 지시를 내린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이 확보한 용의자들의 메신저 대화 내용에 의하면 이들은 피해자 조씨를 ‘5번’이라고 지칭했다. 또 조씨를 옆에서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에릭 현은 ‘4번’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렸다. 피해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든다. 이준현이 8월 19일 텔레그램 메신저에 작성한 메모에는 “5번 8/15 단식 시작, 8/17 창고 이동, 구타, 페퍼 스프레이, 8/18 새벽 1시경 사망(추정시간)”이라고 적혀있다.
검찰은 ‘새 모집’을 마지막 모의로 파악하고 있다. 기소장에 따르면 9월 3~5일경 이준호가 한국계 미국인 여성 ‘A.C.’를 만나 ‘그리스도의 군사’로 모집하려고 했다. 검찰이 파악한 이준호와 이현지의 텔레그램 메시지에는 이준호가 조지아주립대(GSU)에 다니던 이 여성에게 조지아텍으로 편입하는 법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며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비 종교적 극단주의= ‘기독교 이단’ 예방 활동을 하고 있는 바이블 백신센터 양형주 목사는 “자칭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사이비성이 강하다”고 진단하며 용의자 이준호씨의 간증 영상을 보면 “계시를 받았다는 착각을 시작으로 극단주의로 치닫게 된 모습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용의자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한 ‘훈련’ 과정을 보면 성경에서 묘사된 부분과 동일한 점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같은 행위라도 시대적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묵상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양 원장은 덧붙였다.
‘옮겨 심은 나무’라고 할 수 있는 이민자들의 불안정한 심리와 정신적 방황은 특히 사이비 종교 논리가 이민사회에 더 활발히 교묘하게 침투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또 한국보다 이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사이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한인 또는 한인 2세들에게 더 많이 침투하고 있다고 양 원장은 전했다.
양 원장은 “대박, 지름길과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한국 사람들한테 많이 나타난다. 삶을 객관적으로 인내하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빠른 것을 추구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리스도의 군사들’과 같은 살인 사건이 한국인의 이같은 심리나 정서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