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5년 명나라의 선덕제가 38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겨우 9세의 황태자 주기진이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영종이다. 그 후 어린 영종은 황태자 시절에 그의 교육을 담당했던 환관 왕진을 사례감으로 기용했는데 이 왕진의 기용은 명나라 역사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계기가 됐다. 왕진은 명의 조정으로부터 은상을 받는 몽골 사절단의 수를 절반 수준인 1500명으로 줄였다. 교역대상인 말값도 5분의 1로 깎았다. 무역이익을 뺏긴 몽골족은 분노했다. 오이라트군은 일제히 명나라 국경을 침범했다. 급보를 접한 명나라 조정에서는 영종이 참석한 가운데 중신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왕진은 영종의 친정을 권했고 병부상서 광야, 병부시랑 우겸 등은 성급한 친정에 반대했으나 왕진은 친정을 고집했다. 마침내 친정이 결정되어 영종은 친히 5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베이징을 출발했다.
왕진은 일개 환관일 뿐 군사 작전에는 완전 백지였다. 50만이라는 병력의 숫자만 믿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양화의 전투에서 패배를 체험한 환관 곽경이 오이라트군의 용맹과 그들을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고 끈질기게 설득하자 왕진도 일단 회군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회군하는 길을 자형관에서 베이징으로 도달하는 직행길을 피하고 울주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울주는 왕진의 고향이었으므로 황제를 자신의 생가에 모시어 자신의 명예를 고향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군대의 행진이 40리 정도 움직였을 때였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왕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시 울주 지방은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어 수확기를 앞두고 있었다. 그동안의 행군에서 대군이 지나가는 곳마다 농작물이 짓밟혀 황폐화되는 것을 목격한 왕진은 적어도 자기 고향의 농작물만은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왕진은 다시 길을 변경하여 선부를 경유하기로 했다. 왕진의 행군길 변경에 따라 전군은 우회하여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이때 병부상서 광야가 대책을 진언했다. “정예군으로 호위군을 편성하여 황제의 후방을 호위케 하여 황제 일행은 거용관으로 직행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병부상서의 진언에 대해 왕진은 콧방귀를 뀌면서 큰소리로 호통쳤다. “썩은 선비가 무슨 병법을 안다고 그따위 말을 하는 거요. 그따위 말을 다시 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소.”
높은 기동성과 민첩한 정보수집망을 거미줄처럼 펼치고 있던 에센은 명군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포착하여 추적하고 있었다. 에센은 길게 뻗쳐 행군하는 명군의 최후미 부대에 공격을 가했다. 후미부대를 궤멸당한 명군은 다음날 토목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서 왕진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수송부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대로 토목의 성채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왕진에게 초보적인 군사 지식만 있었더라도 이런 살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는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오이라트군은 토목의 성채를 포위했다. 얼마 후 오이라트군의 한쪽 병력이 포위를 풀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명군은 성채를 빠져나오면서 공격했으나 대기하고 있던 오이라트군의 4만 기병에게 여지없이 짓밟혀 섬멸되고 말았다. 수십만의 사상자를 내는 대참패였다. 영종의 친정을 강행했던 장본인 왕진은 호위 장교에게 박살당하고, 영종의 친정에 반대했던 병부상서 광야와 총사령관 영국공 장보 등은 중신들과 함께 장렬히 옥쇄했다. 영종은 어찌할 바를 몰라 초원에 주저앉아 있다가 오이라트군의 포로가 되었다. 친정 중에 황제가 포로가 된 일은 역사상 없었던 치욕이었다. 중국인들은 이 사건을‘토목의 변’이라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의 조건으로 역량·운명·기회·시대적 필연성·상황 적응력 등을 제시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은 탁월한 통찰력일 것이다. 시대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고 국가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능력은 지도자의 필수조건이다. 통찰력에 버금가는 것이 솔선수범하는 몸가짐이다. 평소의 주장과 실제의 생활이 딴판이라면 지도자로서는 자격미달이다. 가장 절실한 지도자의 자질을 하나만 들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신뢰의 인격’을 꼽겠다. 통찰력이나 솔선수범도 인격의 바탕 없이는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인격 없는 지식은 도리어 공동체에 해악이 될 수 있고, 인격 없는 선행은 남의 눈을 속이는 위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새해에 들어서면서 김정은이 남쪽을 향해 온갖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다. 김정은은 ‘유사시 핵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그는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다. 3대 세습 절대 권력자 김정은 말은 중요 정보다. 그러나 그의 말 전체가 통째로 진짜 사실은 아니다. 전쟁 도발 전과자를 상대할 때는 그들의 ‘입’과 ‘손’을 동시에 쳐다봐야 한다. 하나만 보면 오판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북한 김정은을 향해 “적대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김일성 주석의 노력이 폄훼·훼손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연일 ‘전쟁’ ‘주적’ ‘초토화’ 운운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우리 북한”이라니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핵을 들고 전쟁 위협을 하는 것은 김정은인데 방어에 급급한 우리에게 무슨 책임이나 있는 듯 말한다. 북이 도발해도 손 놓고 있으란 건가.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우리 정치에 개입하려는 김정은의 의도를 읽고 초당적으로 비판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민주당과 이 대표는 그 반대로 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만난을 무릅쓸 각오가 서야 적도 움찔하고 동맹국도 움직인다. 그래야 주권국가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22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이 깨어나야 나라가 산다. 3류 정치는 3류의 주권행사가 빚은 결과다. 플라톤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정치를 외면하는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