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확산한 재택근무가 경기 선순환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강도 통화 긴축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가 실질적인 연봉 인상 효과를 내면서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7년 만에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배경으로도 여전히 코로나 이전보다 높은 재택근무가 꼽힌다.
박경민 기자
15일 WFH(Work From Home) 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풀타임 재택근무를 하는 근로자 비중은 28.8%에 달한다. 3명 중 1명은 집에서 일을 한다는 얘기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61.5%) 보다는 급감했지만 코로나 이전(6~7%대)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또 지난 1월 기준 출근과 재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재택근무’ 비중은 29.6%로 1년 전(26.2%)보다 늘었다.
최근 미국 경제 지표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나타내는 것도 재택근무로 인한 경기 선순환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율 기준 3.3%로 시장 예상치(2%)를 크게 상회했고, 지난해 연간으로도 2.5% 성장했다.
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성장세를 이끌었다. 재택근무로 시간적 여유가 생긴 근로자들이 다양한 여가 활동 등으로 소비를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박경민 기자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PwC는 재택근무가 근로자 연봉의 8% 인상과 같은 효과를 창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교통비·식비 등 대면 업무에 필요한 각종 비용 절감 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술 전문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7%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면 10%의 급여 삭감을 감수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또 36%는 급여 인상 대신 재택근무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이에 효율적인 재택근무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투자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차준홍 기자
2014년 이후 연평균 1~2%씩 줄어들던 미국 신생아 수가 7년 만에 증가한 배경으로도 재택근무 활성화가 꼽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의 신생아 수는 366만4292명으로 2020년(361만명)보다 1% 증가했고, 합계 출산율도 1.66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늘었다. UN 등 주요기관들은 2022년 미국 출산율은 1.7~1.8명으로 더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상업용부동산 가격지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그린스트리트]
코로나 팬데믹 초기 경제적 이유 등으로 출산을 미뤘던 기저효과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재택근무가 자리를 잡은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특히 30대 후반~40대 여성의 출산율이 큰 폭 상승했는데 재택근무 활성화로 오랜 시간 밖에서 일하던 고연령 여성들이 집에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 여유를 찾으면서 출산율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NCHS)에 따르면 30~34세 여성 1000명당 신생아 수는 2020년 94.9명에서 2021년 97.3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35~39세 여성 1000명당 신생아 수도 51.8명에서 54.2명으로 늘었다.
다만 집값 상승이라는 예상치 못한 반작용도 나온다. 휴식처이자 업무 공간으로서의 주택 가치가 커지면서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개월 연속 시장 예상치를 상회한 것도 주거비 상승이 주된 요인이었다.
지난 1월 주거비 상승률은 전년 대비 6%(전월 대비 0.6%)로 2023년 초 이후 가장 가팔랐다. 반대로 고금리 장기화에 재택근무 확산으로 인한 임대료 하락까지 겹치면서 미 상업용 부동산은 흔들리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자산 규모가 2000억 달러를 웃돌면서 투자금을 빌려준 중소 은행들까지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김경희(am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