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교사 절대 부족…제대로 된 상담 받지 못해
‘모범적 아시안’ 편견이 오히려 정신적 문제 방치
K팝 열기 속 한국과 미국적 외모 사이 갈등하기도
한인 2세인 라벤더 안 학생(밀크릭고교 12학년)은 202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불과 10분 떨어진 곳에 산다. 당시 사망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아 여성이며 4명은 한인 여성이었음에도 학교 측은 총격 참사 사건을 ‘아시안 혐오범죄’로 이름 붙이길 꺼려했다.
“학생에게 괜찮냐고 묻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또래 학생들도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외로웠다”고 그는 당시 느꼈던 심정을 털어놨다.
아시안증오범죄방지위원회가 2021년 5월 캐롤린 보르도 전 연방 하원의원과 함께 “아시아계 미국인을 이웃의 일원으로 이해하는 첫 단계”라며 고교 교육 커리큘럼에 아시아 문화와 역사 수업을 도입할 것을 주장한 지 3년이 지났다.
그러나 조아라 조지아 아시아계학생연합회(ASA) 대표는 21일 줌 인터뷰를 통해 “여전히 학교에서 아시아계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아시안 학생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ASA는 2021년 조지아 전역의 교사연합으로 시작해 현재 아시아·태평양계(AAPI) 청소년을 위한 비영리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귀넷 카운티는 아시아계 학생 비율이 전국 평균 수준의 2배 가량으로 높지만 아시아계 교직원 수는 불균형이 심각하다. 귀넷 교육위원회 산하 교직원은 약 2만 명으로 이중 백인(53%), 흑인(27%), 히스패닉(10%) 순으로 많다.
안 양은 “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중국계 교사를 제외하면 아시안 교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월턴고교 10학년인 재클린 권 학생도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담 교사들은 부모님과 의논하라는 피상적 조언만 반복할 뿐”이라며 인종별 교사 비율의 불균형 문제를 제기했다.
왼쪽부터 조아라 대표, 라벤더 안, 재클린 권.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이라는 편견= 권 양은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해 학교 출석과 성적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의 정신 건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매일 정해진 학과 시간표에 맞춰 등교해 책상 앉기를 견뎌내는 과정을 학생 지도의 전부로 여긴다면 아시안 학생들의 문제는 자연히 묻혀버릴 수 밖에 없다.
조 대표는 “동아시아 학생들이 가진 암묵적 뉘앙스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태반”이라고 전했다. 교육자가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중요한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면 학생 스스로도 자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높다.
학생들은 고착화된 ‘모델 마이너리티’ 즉, ‘모범적 소수계’ 패러다임이 공립학교에서도 만연해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을 교육 수준이 높고 성실한 ‘모범적’ 이민자로 추켜세우는 편견이 한인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오히려 해롭다는 것이다.
“높은 학업 성취도가 아시아계 학생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다 보니 개인의 노력 과정이 주목받기 보다는 집단의 특성으로 여겨진다”는 게 권 양의 지적이다.
▶한인 청소년들이 겪는 ‘이중 굴레’= 10대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소셜미디어(SNS)는 특히 한인 여성 청소년에게 강한 외모 강박으로 인한 불안증세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에 퍼진 K팝 열기는 한인 청소년에게 ‘이중의 굴레’ 속으로 몰아넣는다.
안 양은 자신이 “‘한국적’ 아름다움의 기준도 ‘미국적’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K팝 인기가 확산될수록 한국 아이돌이 내세우는 정형화된 동양 여성의 이미지와 자신을 수시로 비교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인’처럼 매력적으로 보여야 된다는 이중의 굴레에 놓이기 쉽다는 지적이다.
실제 마이애미 대학의 2017년 이중문화 연구에 따르면 이민자 여성은 출신 국가와 이민국가의 미의 기준이 충돌할 때, 어떤 잣대에 순응해야 할지 내적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잦다.
특히 아시아와 인종적, 문화적 차이가 큰 미국에서 아시안 청소년들은 상반되는 미적 기준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면서 자신의 몸을 한 쪽에 맞춰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받는다.
권 양은 “고정관념을 양산하고 고착화시키는 SNS의 특성이 미적 기준과 결부될 경우, 여성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